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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 온 가족이 분주했다. 작년 가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는 추석인지라 그 어느때보다 성묘에 대한 느낌이 남달랐다. 동생네 가족은 시댁 성묘도 있고 해서 어머니와 형님네 가족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집 근처 보현정사 납골당이다. 납골당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성묘하는 모습이 어릴 적 산소를 찾았던 추석 성묘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성묘를 마치고 점심도 아직 많이 남은 터라 형님이 조카들에게 갓바위를 보여주고 싶다며 잠시 들러 집으로 가잖다. 어머니 말씀이 지난 태풍으로 다리가 끊어져 갓바위를 볼 수 없을 거라고 하신다. 형님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설마 다 복구됐겠지 하고 가보자고 한다. 필자도 꼭 가보고 싶었다. 중학 시절 가봤으니 거의 25년만의 방문이니 내심 설레임이 있었다. 어쨌든 가보기로 하고 택시 두 대에 나눠 갓바위로 향했다. 택시 기사 말이 아마 지금쯤 추석도 있고 해서 서둘러 복구했을 거란다. 택시 기상의 말에 어린 시절 갓바위 해수욕장에서 뛰놀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택시로 10분 정도 달려 갓바위 입구에서 내렸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한산했다. 목포에서는 손꼽히는 관광지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을 줄이야. 어머니 말씀이 택시 기사가 아마 잘못 알고 있었을거라 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해변을 따라 돌아가니 '아직 복구중'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도 잘못 알고 왔는지 한창 철수중이었다. 필자도 그랬지만 조카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듯 했다. 어머니는 서울 사는 조카들이 언제 이렇게 바다를 볼 기회가 있냐며 갓바위 뒷산으로 산책이나 하자신다. 산에 올라보니 갓바위 등이 보이고 나뭇잎 사이로 갓바위 관광을 위해 만들어놓은 다리가 끊어진 게 살짝 보인다.

 

 

조금 더 돌아가니 갓바위 옆모습이 살짝 보이고 끊어진 다리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갓바위는 바다를 향하고 있어 배를 타지 않고는 좀체 정면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만들어놓은 다리인데 저번 15호 태풍 볼라벤으로 이렇게 끊어진 것이다. 조카들은 어떻게 바람 때문에 다리가 끊어질 수 있냐며 신기해 한다. 하기야 볼라벤이 올라올 때 어머니께 전화드렸더니 당신 평생 바람이 무섭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셨다는 어머니 말씀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이란 한없이 약한 한낱 미물에 불과하나보다. 그래도 여전히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허황된 욕심에 사로잡혀있다. 자연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관광용 다리가 끊어진 이상의 처참한 재앙이 있음을 수차례 경험했지만 망각의 동물인지 아직도 자연 정복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한 순간이었다.

 

 

 

동산처럼 낮은 산 정상에 이르니 목포 갓바위 관광 안내판이 보인다.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완벽한 갓바위의 정면은 볼 수 없었다. 목포 갓바위는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풍화혈(風化穴)이다. 모습이 갓을 쓴 사람을 닮았다고 해서 갓바위라고 부른다. 자연보다 뛰어난 조각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다. 목포 갓바위는 2009년 4월27일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된 유달산, 삼학도와 함께 목포 8경 중의 하나다.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 올려본 목포 갓바위 사진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갓바위에 얽힌 전설은 그저그런 옛날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석에 되살린 갓바위 전설은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한다.

아주 오래 전 옛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소금팔이 젊은이가 있었다. 소금팔이 아들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부잣집 머슴으로 들어갔는데 주인은 품삯을 주지않고 내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 아버지는 이미 죽고 말았다. 소금팔이 아들은 아버지 병간호를 제대로 못한 자신의 불효를 한탄하며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그만 실수로 관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아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갓을 쓰고 아버지를 지켰다고 한다. 불효한 마음에 몇 날을 아버지를 지키던 아들은 그 자리에서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들이 죽자 그 곳에서는 바위 두 개가 솟아올랐는데 이 바위가 갓바위라고 한다. 아버지 바위와 아들 바위는 그렇게 나란히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다.

 

 

갓바위 뒷산을 돌아 평화광장 쪽으로 내려오니 갓바위 옆모습이 멀찍이 보인다. 지금은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매립해서 없어졌지만 갓바위 옆 이곳은 어릴 적만 해도 작은 모래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이었다. 중학시절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학교가 있어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자주 놀러오던 곳이었는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굳이 작고 깜찍한 모래사장을 없앨 필요까지 있었을까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평화광장에서 대불공단이 바라보이는 쪽에 있는 춤추는 바다분수다. 어머니 말씀이 밤에 이 곳에 오면 장관이란다. 광장 주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 저마다 추석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어릴 적 광활한 놀이터였던 자리에 생긴 하당 신도시를 걷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메라라도 챙겨 내려갈 걸.....다음에 집에 내려갈 때는 오랫만에 유달산을 올라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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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