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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녀에게 부부관계는 성적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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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진건/1924년

 

아동 권리를 위한 국제 구호 기구인 플랜 인턴내셔널(Plan International)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20%의 여성이 15살 이전에 결혼해 세계에서 가장 조혼율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유니세프(UNICEF,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는 방글라데시 여성의 66%가 18살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조혼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혼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조혼은 여성인권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조혼은 여성의 교육기회 박탈은 물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한중록>의 작가 혜경궁 홍씨도 아홉 살에 간택될 때까지 삼촌 집에서 배운 언문교육이 다 였다고 하니 조혼의 폐습은 가부장적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버팀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는 조혼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많았으니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상징하는 폐습이 바로 조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혼은 유교적 사회윤리 속에서 가부장적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용인된 풍습이기도 했다. 물론 1894년 갑오개혁 당시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세 이상만 성혼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긴 했지만 뿌리깊은 악습이 하루 아침에 없어질 리 만무했다. 그러던 것이 1920,30년대 근대의식의 확산과 함께 조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현진건의 소설 <불>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담아낸 소설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이 강요받았던 현모양처로서의 여성상은 서구 문물의 유입과 함께 '신여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그동안 부모가 결정권을 가졌던 전통적 개념의 결혼도 남녀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결혼으로 변화되어가는 시점이 바로 192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조혼 풍습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저자의 이런 폐습에 대한 저항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성적폭력으로 묘사하는 데까지 이른다.

 

얼마만에야 무서운 꿈에 가위눌린 듯한 눈을 어렴풋이 뜰 수 있었다. 제 얼굴을 솥뚜껑 모양으로 덮은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함지박만한 큰 상판의 검은 부분은 어두운 밤빛과 어우러졌는데 번쩍이는 눈깔의 흰자위, 침이 께 흐르는 입술, 그것이 삐뚤어지게 열리며 드러난 누런 이빨만 무시무시하도록 뚜렷이 알아 볼 숙 있었다. 순이는 배꼽에서 솟아오르는 공포와 창자를 뒤트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가, 버르적거렸다가 하면서 염치없는 잠에 뒷덜미를 잡히기도 하고 무서운 현실에 눈을 뜨기도 하였다. -<불> 중에서-

 

이제 고작 열 다섯 살. 순이가 겪어야만 하는 현실은 남편의 육체적 욕망과 헤어날 수 없는 시집살이다. 그 어디에도 사람인 순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의 성적 쾌락과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밤낮으로 쉼없이 작동해야만 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이들 부부 사이에 사랑이란 존재할 리 없다. 부부만의 은밀한 행위를 밖에서 모르는 척 지켜보고 있는 시어머니는 섬찍한 느낌마저 준다. '자욱한 안개를 격해서 광채를 잃은 흰 달이 죽은 사람의 눈깔 모양으로 희멀겋게 서로 기울고 있는 밤'은 전근대적 폐습의 희생양으로 남아있던 당시 여성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해 준다.

 

열 다섯 순이에게 가해진 고통은 남편의 성적폭력만은 아니다. 시어머니의 육체적 학대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그녀의 숙명이요, 운명이다. 강요된 부부관계, 순이에게 남편은 '원수'요, 부부의 은밀한 무엇이 숨겨져 있는 공간은 '원수의 방'일 뿐이다. 순이가 벗어나고자 하는 '원수의 방'은 다름아닌 전근대적 폐습과의 단절이다. 온전히 사랑으로 결합된 이상적인 부부관계는 '원수의 방'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럭저럭 하루 해가 저물어간다. 으슥한 부엌은 벌써 저녁이나 된 듯이 어둑어둑해졌다. 무서운 밤, 지겨운 밤이 다시금 그를 향하여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려 한다. 해질 때마다 느끼는 공포심이 또다시 그를 엄습하였다. 번번이 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밤 피할 궁리를 하여 그의 좁은 가슴은 쥐어뜯기었다. 그럴 사이에 그 궁리는 나서지 않고 제 신세가 어떻게 불쌍하고 가엾은지 몰랐다. -<불> 중에서-

 

그러나 순이가 벗어나야 하는 근본적인 것은 밤이 아니다. 그것이 '원수의 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날 순이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만다. 한편 순이의 남편과 현실에 대한 저항 의지는 시내에서 물을 긷다 눈에 띄인 송사리를 죽이는 장면으로 형상화된다. 자신의 처지와는 달리 욜랑욜랑 거리는 모양이 퍽 얄밉게 보였던지 순이는 송사리를 잡아 땅바닥에 태질을 쳐 죽인다. 이 장면은 소설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와 폐습에 대한 저항으로 순이가 선택한 길은 불행하게도 방화다. 방화의 범인이 순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 그 집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는 순이가 근래에 없던 환한 얼굴로 기뻐하고 있는 모습은 전근대적 폐습에 대한 저항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의 성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 듯 가부장적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의 전근대성과의 단절을 향한 저자의 의지가 불로 상징화 된 것이다. 또 결혼과 부부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현진건이 <빈처>, <운수좋은 날> 등에서 보여주었던 전근대적 여성에 대한 연민을 소설 <불>에서는 현실에 저항하는 보다 적극적인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진건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당시 유교적 사회윤리 속의 여성들의 삶과 조혼이라는 풍습은 저자가 고민하고 있던 전근대적 폐습의 응축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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