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에 형성된 신화의 기원은 두가지 관점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신화의 확산이다. 말 그대로 특정 지역의 신화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유사한 형태의 신화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신화의 분산이다. 전혀 상호교류가 없는 별개의 집단들이 자연적 또는 지리적으로 유사한 상황을 접하며 살아가는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신화가 별개의 독자적 상상력으로 그 정황이 유사하게 해석되는 경우를 말한다.
신화의 확산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예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홍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 기후적으로도 홍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홍수 신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신화의 분산을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들 수 있다. 이 신화는 전혀 새로운 지역인 그리스와 페르시아 그리고 신라(삼국유사)에서 발견된다. 문화적 교류보다는 그 지역에 이미 존재했던 신화가 독자적 상상력으로 유사하게 해석되는 경우다.
신화의 확산과 분산을 설명해주는 신화들은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다. 특히 신화 확산의 예는 서로 다른지역간 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홍수 신화 말고도 페니키아 문자가 알파벳을 기원이 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 카드모스 신화와 아네모네의 꽃말을 설명해 주는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신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만도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20세기 이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국가들 특히 이라크와 이스라엘 지역에 전해지는 신화들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단절된 교류의 역사적 신화적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카인과 아벨 신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 중에 카인과 아벨 신화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따지자면 카인과 아벨 신화는 가나안 신화로 분류된다. 즉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군사적 공격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주무대로 한 신화가 카인과 아벨 신화다.
알다시피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이브의 자식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뒤 태어난 형제가 바로 카인과 아벨이다. 형제는 각자의 삶을 영위하면서 그들의 소산을 야웨(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아닌 고유명사, 하늘의 신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에게 제물로 바친다. 카인은 땅에서 얻은 곡식을, 아벨은 그가 기르고 있는 양이 낳은 첫 새끼를 야웨에게 바쳤다. 그러나 야웨는 카인의 제물은 거절하고 아벨의 제물만을 흠향하게 된다. 제물을 거절당한 카인은 아벨을 질투하게 되고 결국 아벨을 죽이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게 된다. 야웨는 이런 카인을 유랑자로 만들고 훗날 카인은 놋 땅에 정착해 도시를 세우고 인류문명의 기원이 되는 후손을 낳는다는 게 이 신화의 개략적 내용이다.
두무지와 엔킴두 신화
한편 수메르에는 카인과 아벨 신화와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두무지와 엔킴두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수메르는 오늘날 이라크 지역으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다. 무려 기원전 3,000년경에 발생한 문명의 주인공으로 이후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제국으로 이어진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랑의 여신 인안나는 목동의 신 두무지(바빌론 신화의 탐무즈에 해당)와 곡식의 신 엔킴두 중 한 명을 사랑의 동반자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인안나는 엔킴두에 마음을 두고 있지만 인안나의 오빠인 태양의 신 우투는 두무지와 결혼할 것을 강요한다. 인안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두무지와 엔킴두의 구애작전은 점입가경이다. 엔킴두는 두무지에게 자신이 수확한 곡식 대신 인안나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두무지는 엔킴두가 결국 그의 친구가 될 것이며 인안나와의 결혼식에 친구로 초대받을 것이라며 일거에 거절하고 만다. 결국 인안나는 그의 오빠 우투의 의도대로 원하지 않는 두무지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화 학자들은 신화의 확산을 설명하면서 두무지와 엔킴두 신화에서 엔킴두의 곡식을 거부한 장면은 카인과 아벨 신화에서 야웨가 카인의 곡식을 거절한 사건의 원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히브리 신화의 편집자들에 의한 정교한 각색의 산물인 것이다. 두 신화를 신화 전승의 예로 드는 데는 신화의 메타포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엔킴두와 카인은 오랫동안 그 지역을 선점해 살아왔던 농경 중심 사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두무지와 아벨은 이주민 또는 침입자인 유목 중심 사회의 상징으로 전혀 다른 문화의 충돌로 빚어진 갈등을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것이다. 다만 두무지와 엔킴두 신화와 달리 카인과 아벨 신화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무지와 인안나의 강요된 사랑(태양의 신 우투에 의한)의 뒷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어느 날 지옥으로 들어간 인안나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기야 한 번 지옥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게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신화세계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저승에 있는 자와 이승에 있는 자간에 일대일 맞트레이드다. 인안나는 자신의 남편 두무지를 자기 대신 저승의 신에게 바치고 자신은 이승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랑없는 동거는 불행의 씨앗이라는 옛 사람들의 경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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