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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대(大)를 위해 소(小)는 희생되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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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학송의 <독목교>/1953년

                                                    

역사는 자기희생을 무릎쓴 영웅들의 피로 전진한다고들 한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대(국가, 민족...)을 위해 소(개인)를 희생한 영웅들의 삶은 늘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들의 삶은 교과서 속에서 추앙의 대상이 되고 개인의 삶은 그들의 그것으로 개조되기를 강요받기도 한다. 물론 교육적 차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 쓰러져간 수없이 많은 개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소수의 영웅들이 교과서를 점령하는 사이 이름없는 개인들의 삶은 그 가치마저 왜곡되기도 하고 폄하되기 일쑤다. 특히 거대한 국가적 담론 앞에서 늘 개인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지만 결코 숭고한 희생에 대한 보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아니 만들어진 기계일 뿐이다. 여기에 대(
)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는 것이다.

 

전쟁의 비정한 진실을 다룬 곽학송의 <독목교>에는 승산없는 전투를 두고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중대장 이덕호 중위와 개인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부관 김영수 소위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두 사람은 온전히 삶의 마지막 희망인 외나무 다리(독목교, 獨木橋)를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이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대의멸친(大義滅親)이니 멸사봉공(滅私奉公)이니 하는 말들의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권위주의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민주화의 시대라는 최근에도 국가나 권력 앞에 개인이나 힘없는  다수는 항상 댓가없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교육 탓인지 때로는 자발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국가와 권력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소위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지만 정작 대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그것은 희생만 해온 개인들의 삶이 질적인 발전은 커녕 여전히 답보상태이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때로는 보통 사람 이상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것이 군인답지 않으냐는, 덕호에 대한 반감이 썩 부질없었다. 기계처럼 상관의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며 누구를 위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못생긴 이 산봉우리에 흘린 사람의 피가 과연 누구를 위할 수 있는가. 총소리에 놀라 계곡을 건너 머리 위로 날아오는 소쩍새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독목교> 중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강요가 아닌 선택이어야 한다. 개인을 포함한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소중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의지이면서 삶 그 자체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승산없는 전투에서 메뚜기로 희화화(?)되는 그래서 비겁한 자의 변명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살아남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

십 미터나 되는 절벽에서 뛰어내려봤댔자 오체가 그대로 생생할 리 없었고 설사 무사히 절벽 밑 흙을 밟는다 하더라도 비 오듯 쏟아지는 적탄 속을 헤치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절벽 밑에 떨어져 오체가 산산이 부서지거나 적탄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껏 몇 초 동안을 더 살겠다는 본능이 무의식중에 그들로 하여금 메뚜기의 흉내를 내게 한 것인지도 몰랐다. -<독목교> 중에서-

소설은 영수의 눈에 소영웅주의로 부대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쳐졌던 덕호가 사실은 연대장의 명령이었음이 밝혀진 순간 극적인 심리적 반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갑자기 애매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수는 덕호를 경멸했던 자신의 마음 속에 오히려 불순한 티가 섞이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살기 위해 절벽을 뛰어내리는 병사들을 메뚜기로 희화했던 저자의 의도가 이런 극적반전을 위한 복선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무아무심(無我無心)으로 기계처럼 상관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병들의 태도가 참다운 군인의 본문이며 어떡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요, 또한 그러한 태도만이 인간과 인간사회를 위할 수 있다면 덕호나 자기는 인간을 배반한 범죄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독목교> 중에서-  

개인의 삶이 또는 인간 생명의 가치가 가장 철저하게 파괴되고 짓밟히는 현장이 바로 전쟁이다. 불분명한 전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오직 희생만 강요당하고 그 희생만이 숭고한 가치로 포장되는 게 전쟁의 비정한 진실이다. <독목교>의 저자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면서 국가적 담론에 개인의 희생이 숙명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에 이른 데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는 소수의 위대한 영웅들보다 메뚜기처럼 살기 위해 절벽을 뛰어내리는 이름없는 민초들에 의해 씌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대장에 대한 덕호의 원망이 순간적이기를 바라면서 덕호를 등에 업고 외나무 다리를 건널 결심을 한 영수도 사실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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