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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김근태, 그는 20세기 한국의 바비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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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의 <바비도>/1956년

"부패하고 폭력적인 군사독재정권과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한 선생의 일관성은 정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줬고 변화를 향한 도정에서 전환점이 됐다." -케네디 인권센터 설립자 캐리 케네디의 서한 중에서-

그가 갔다. 남은 이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겨울을 남겨둔 채 홀로 그렇게 그는 갔다. 세상을 향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그였지만 파킨슨이라는 또 하나의 억압자에 의해 말과 행동을 구속당한 채 끝내 고통없는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김근태. 그는 시대의 양심이었고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민주정부 10년의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었다. 

나는 감히 그를 한국의 바비도라 부르겠다. 바비도는 영어 성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불에 타 죽은 영국의 한 재봉직공이었다. 그는 그의 선택에 따라서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죽음 앞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던 이유는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자유'였다.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바비도의 얼굴에서 김근태의 온화한 미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시대의 양심, 민주화의 상징

<바비도>를 발표할 당시 작가 김성한은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주간을 맡고 있었다. 제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했던 바비도는 개인이 거대한 조직에 맞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투쟁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교회와 교황은 부정한 국가권력과 국가권력을 움직이는 독재자를 상징한다. 김근태는 바비도처럼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라는 거대한 국가권력과 맞서 싸웠다. 부정한 권력은 그에게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협박하고 회유했지만 끝내 타협의 손을 내밀지 않았던 것은 바비도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의 똑바른 마음을 속이지 않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불행의 시초는 도대체 인간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있다. 누가 이 세상에 나고 싶다고 했더냐? 이놈은 이 소리 하고 저놈은 저 소리 하다가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도끼질할 권리는 어디서 얻었단 말이냐? 너희들은 자기가 옳다는 것, 아니 자기에에 이익되는 것을 창을 들고 남에게 강요할 권리가 있고, 나는 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 자신만 행할 권리, 가슴에 간직할 권리조차 없단 말이냐?' -<바비도> 중에서-

김근태를 죽음에 이르게 한 파킨스병은 바비도가 교회와 교황의 억압에 항거하다 받은 모멸의 흔적처럼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의 후유증이었다. 그가 악랄한 고문을 견뎌낸 데는 그가 지키고자 했던 '양심의 자유' 때문이었고 그가 '양심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국가폭력으로부터 구해내야만 했던 민중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이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그냥 가렵니다. 다행히 하찮은 영혼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지옥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동안 될 수만 있으면 권력세계의 주역을 깨끗이 치르고 오십시오." -<바비도> 중에서-

강자의 불의에는 더없이 강한 그였지만 약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낮추는 대인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줬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했다. 바비도의 신념을 지키려는 의연한 태도 앞에 사교(한 교구를 관활하는 교직)의 가슴에 인간의 양심이 꿈틀거렸던 것처럼 이근안도 자신의 과거를 참회했던 것일까. 그는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양심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에는 종교 또한 거대한 권력이 됙 있다는 사실은 슬픈 현실이다. 이근안은 목사가 된 후에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거를 애국이라 주장했고 자신은 고문 기술자가 아닌 신문(訊問) 기술자라며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보는 듯 착잡한 심정 금할 길 없다.

김근태는 케네디 인권상의 수상자이기도 하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으로부터는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바비도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개개인의 양심들을 무서워하게 만들었고 소시민들이 '양심의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할 수 없구나. 잘 가거라. 나는 오늘날까지 양심이라는 것은 비겁한 놈들의 겉치장이요. 정의는 권력의 버섯인 줄만 알았더니 그것들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네가 무섭구나, 네가……" -<바비도> 중에서-

"2012년을 점령하라."

 권위주의 시절 김근태는 시대의 양심이자 희망이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우리는 그에 대한 고마움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다시 찾아온 권위주의 정부에서 우리는 그가 다시 희망을 불씨를 지펴주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승에서 그를 짓누르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굳이 '양심'을 외쳐도 되지 않는 세상에서 영면하게 될 것이다. 희망의 불씨는 오로지 남은 자들의 몫이자 과업이 되었다.

김근태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말과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강령을 제시해 주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 자신의 블로그에 '2012년을 점령하라'는 제목으로 대중들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 그는 작년 하반기 전세계로 확산된 월가 시위 배경에 대해 '1%를 향한 99%의 분노'로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만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 초입에 그의 주장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은 권력자가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공정한 사회 대신 사회적 불평등은 하루가 다르게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김근태의 '2012년을 점령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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