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지에서 꽤 먼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동네 어른들의 대화 중에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말이 있다. ‘누구누구는 아마 아편으로 죽었지?’ ‘해마다 면에서 나와 양귀비밭을 불지르곤 했는데, 그러면 뭘해. 내년이면 또 여기저기 새로 나는데…’ 얼핏얼핏 스치는 얘기들이었지만 아직껏 기억이 뚜렷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 아편을 복용하셨고 그게 이유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편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어서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동네 어른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았다. 내가 태어난 섬은 일제 강점기 지주의 횡포에 대항해 농민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던 곳이다. 이 농민운동은 해방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일제의 보호아래 성장했던 지주들이 여전히 섬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아침 일찍 등교할 때면 교문 앞에서 낯선 아저씨, 아주머니들 몇 분이 ‘매국노 물러가라’며 시위하는 장면을 보곤 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이사장이 일제시대 섬 땅을 호령했던 지주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제의 보호 아래 성장했던 지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던 섬 사람들은 일제 경찰과 그 사주를 받은 단체의 갖은 폭행에 시달렸고 결국엔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이 고통을 잊기 위해 찾았던 것이 아편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널린 게 양귀비였으니까.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1589)가 쓴 자전적 에세이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이라면 경험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기억 때문이었다.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는 이 묘한 뉘앙스를 굳이 언급한 것은 그만큼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말일게다. 드 퀸시의 화려하고 수려한 문체가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는 하나 일반 독자들, 특히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이 화려하고 수려한 문체가 읽기를 방해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한다면 나를 너무도 쉽게 발가벗긴 것일까?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드 퀸시의 언급대로 아편쟁이의 고백이 아닌 아편에만 몰입하게 한다.
“현명한 독자들은 마법에 걸려 꼼짝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마력에 주로 흥미를 가질 것이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독자들의 관심이 맴도는 진짜 중심은 아편쟁이가 아니라 아편이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중에서-
다만 새로운 고전을 발굴한다는 출판사의 의도에 무한한 공감을 보낼 뿐이다. 앞으로 이어질 낯선 고전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힘겹게 읽어낸 내 자신에게 쑥스런 박수를 보낸다. 거의 2주를 헤메고 있었으니 말이다.
드 퀸시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죽음, 이어진 어머니의 죽음, 천성적으로 약한 체질에다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류마티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을 시작한 이야기에서 그가 겪었던 아편의 쾌락, 그 뒤에 남겨진 고통을 수려한 문체로 고백하고 있다. 그의 고백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마약은 무조건 나쁘다는 의사들의 말과는 달리 그가 직접 체험한 마약의 쾌락과 환상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편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다면 그건 오로지 독자 몫이다. 체면과 격식을 유별나게 따지던 당시 영국에서 ‘드’라는 귀족 호칭까지 받은 저자의 대담한 용기를 폄하하지 않겠다면 허튼 상상은 하지 말길 바란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마음에도, 결코 치유되지 않을 상처에도, 정신을 반역으로 유도하는 고통”에도, 위안을 가져다주는 아편이여. 그대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중에서-
이처럼 아편은 드 퀸시에게 무한한 고통의 해체와 함께 무한한 상상력을 주었다. 여기까지가 그가 겪은 아편의 전부였다면 그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처박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알았다. 쾌락이 차츰 고통으로 변해가는 것을. 순간적인 고통의 해체는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고 무한한 창조를 가능케 했던 동력은 불안과 우울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살다보면 경계에 서게 된다. 여기서 고통이 수반되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그 경계의 대부분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쾌락과 파멸의 경계에선 드 퀸스의 부끄러운 고백이 가치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아편을 줄이는 자기노력에 돌입하게 되고 결국 아편을 끊게 된다. 아편을 복용했던 기간만큼이나 아편을 끊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부끄럽지만 자랑스런 자기고백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아편쟁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에서 도식적이 아닌 경험자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비록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이라는 외적인 동기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순간의 쾌락을 이기려는 에너지가 또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바란다. 아편쟁이들이 이 에너지를 더 많이 가지기를…
“하지만 아편쟁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의 사례는 17년 동안이나 아편을 복용하고 8년 동안이나 아편의 힘을 남용한 뒤에도 여전히 아편을 끊을 수 있다는 증거라고 그리고 자기는 아편을 끊는 일에 나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다고. 또는 자기는 나보다 체질이 튼튼하니까 힘을 덜 들이고도 나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노력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려 들지 않겠다. 그 사람이 나보다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사람도 나처럼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중에서-
해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연예계 고질적인 사건이 있다. 바로 마약사건이다. 그들은 공인이기에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또 개인적인 선택과 파멸을 법의 잣대로 들이대도 되느냐는 반론이 힘을 얻을 수 없는 이유도 마약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지가 못하다. 당사자에 대한 비난만 있을 뿐 마약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공공의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정작 공론을 비껴가는 우리사회의 씁쓸한 일면을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서평 사이트 '북곰'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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