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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립(而立)/심상훈 지음/왕의 서재 펴냄

인간은 태어나서 성공을 향해 쉼없이 달려간다. 매순간 의식하지는 못할지언정 성공이라는 고지를 향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성공의 실체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성공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사회적 지위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화로 포장되어 회자되기도 한다. 누구나 술술술 풀리는 성공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게 성공이라면 신화가 된 성공담들이 무색해지지 않겠는가!

여기 술술술 풀리는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술술술'을 즐기라는 중년 남자가 있다. 이 중년 남자는 KBS <활력충전530>, <경제 비타민> 등에서 재치넘치는 입담으로 시청자들로부터 명강사 타이틀을 얻은 바 있는 경영 컨설턴트이자 북칼럼니스트라고 한다. 심상훈, 그는 방송에서 못다한 얘기들을 활자로 쏟아내기라도 한 듯 성공을 얘기하는 기발한 상상력과 유쾌함이 돋보인다. 심상훈의 [이립]은 '술술술 풀리는 남자 서른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성공에 관한 자기계발서이다. 

그는 곤란을 겪고서 성공한 사람들,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은 사람들에게서 3가지를 봤다고 한다. 그게 바로 '술술술'이란다. 그의 '술'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이립]이라는 책제목이 궁금해진다. 공자의 "나는 나이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다 三十而立"에서 빌어온 표현이다. '이립'은 서른을 일컫는 말이다. 공자가 나이 서른에 뜻을 세웠다니 성공을 위해서는 꿈이 있어야 하고 꿈을 실현할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게다. 어깨가 축 처진 우리네 불혹(40세)과 지천명(50세)들은 어떡하란 말인지...겨우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는데 무슨 걱정인가! 이제라도 성공 이야기의 첫 장을 시작해보자. 남자 서른이라는 말에도 개의치 말지어다. 성공한 여자들의 얘기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립'의 의미를 이해했다면 이제 저자가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보았다는 '술' 이야기를 들어보자.

'술'에 담긴 성공철학

저자가 말하는 첫번째 술은 '마시는 술 酒'이다. 술 권하는 사회가 미덕이던 시대도 한참 지났는데 성공의 첫째 조건으로 덥석 술을 얘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쓴 7년을 분석해 보니 그 중 18%를 술마시는 데 할애했다는 어느 교수의 분석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게다. 그러나 저자도 겨우 소주 넉 잔이 주량이란다. 그는 말한다. 성공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꾸자면 '술 酒'는 '소통'이 아닐까싶다. 꼭 술을 마셔야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도와주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통하는 자리를 즐기라는 뜻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처럼...

두번째 술은 '메모와 기록 述'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의 조건이고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이기도 하니 첫번째 술과는 달리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 왕의 비서들이 현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직접 붓으로 쓴 필사본인 『승정원일기』새롭게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한 『승정원일기』의 공저자 박홍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의 말을 빌어 '적자생존'이라는 기막힌 표현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적자생존'은 생물학 용어가 아닌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로 메모와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기억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메모는 기억의 보조장치가 아니라 기억을 영구히 연장시켜준다. 김세형 이노디자인 사장이 어느날 스타벅스에 앉아 하나같이 검은색의 못생긴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급히 냅킨에 스케치해 출시한 작품이 아이리버 펜던트(목걸이)형 MP3플레이어라고 하지 않은가!

저자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술은 '나만의 재주 術'이다. 저자는 하찮은 재주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얼마나 꾸준히 가꾸고 키우느냐가 성공을 담보한단다. 학문에도 그리 뛰어나지 못했고 가난한 소농의 아들이었던 유비도 도원결의로 삼국지 시대를 열기 전 그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돗자리 짜는 기술'이었다고 한다. 나만의 재주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재주가 성공을 위한 전부라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무엇보다 '마음재주'를 강조한다. 마음보를 좋게 쓰라는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더라도 나를 사랑하고 남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결코 상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성공은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고 처음에 말하지 않았는가! 제갈량은 마속의 사람됨이 교만하다는 유비의 말을 무시하고 마속의 재주만을 높이 샀다가 아군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제갈량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마속의 목을 베어 본보기로 삼았다. 저자는 '읍참마속 泣斬馬謖'이라는 이 고사성어를 통해 '마음재주'가 없는 '나만의 재주'가 얼마나 쓸모없는가를 보여준다. 신사임당이 성공한 여성의 상징이 된 것도 '그만의 재주'가 '마음재주'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살펴본대로 저자가 풀어내는 성공 이야기의 주제는 별로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막연한 성공의 조건들은 저자의 고전을 비롯한 풍부한 독서량과 다양한 이들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쓴 [이립]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다만 너무도 많은 고전의 인용과 인물의 등장이 행간을 읽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성공신화에 매몰되지는 말자

저자의 필력을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이 책뿐만 아니라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허점이라면 허점일 수도 있다.

성공 관련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부분은 기업 CEO나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저명인사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여전히 생소하게 다가오는 우리사회에서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지도 않지만 종종 부도덕한 부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인용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도 존경받는 CEO로 신한금웅지주 라응찬 회장이 소개되고 있다. 과거 모시던 상사의 청탁까지도 거절한 '참 독한 사람'으로 말이다. 책을 덮을 뻔했다. 횡령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라응찬 회장이 아닌가! 

성공신화를 읽을 때는 저자의 표현 중 가장 인상깊었던 '마음재주'를 같이 읽을 줄 알아야 한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에서 '1등'이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사회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꼴찌도 행복한 사회, 꼴찌도 보듬을 줄 아는 '1등'이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성공신화는 비로소 빛을 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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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