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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술의 여신 시두리와 영웅 길가메시의 만남과 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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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리(Siduri)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술의 여신이다. 이 토판에서 그녀는 ‘술집 여자’로 그려진다. 시두리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이야기에서 그녀는 이름이 없으며 <길가메시 서사시>를 편집한 것으로 알려진 신-레키-운닌니(Sin-Leqi-Unninni, BC 1300년경~BC 1000년경으로 추정)의 편집본에도 그녀의 이름은 단 한 줄만 나온다. 후르리어와 히타이트어로 번역된 토판에서 시두리의 이름은 나마줄렐(Nahmazulel) 또는 나미줄렌(Nahmizulen)이다. 시두리는 후르리어로 ‘젊은 여자’라는 뜻이다. 시두리가 등장하는 모든 신화에서 그녀는 영웅(길가메시)에게 조언하지만 그 정확한 내용은 다양하다. 시두리의 조언이 포함된 구절에 대한 성서적, 그리스적 반향은 학문 논쟁의 주제이기도 하다. 다른 문맥에서 시두리라는 별칭은 후르리의 알라니, 이샤라, 알란주는 물론 메소포타미아의 이시타르를 포함한 다양한 여신들을 언급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시타르를 <길가메시 서사시>의 술집 여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다.

 

술의 여신 시두리는 니푸르 신전에서 숭배되었다. 출처>구글 검색

 

후르리 자료에서 시두리라는 별칭은 알란주(헤파트 여신의 딸, 청춘의 여신), 알라니(지하세계의 여신), 이샤라(결혼의 여신) 등과 메소포타미아의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시타르를 언급한 이름이기도 하다. 시두리는 중기 바빌로니아 시대에 이 여신들의 별칭으로 적용되기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원래 이 여신들은 별개의 신이었다. 그렇다고 이시타르가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두리를 묘사한 ‘술집 여자’는 아니다. 한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주문인 슈르푸(Shurpu)는 시두리를 지혜의 여신으로 언급한다. 이 또한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연관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두리로 언급된 이시타르는 니푸르(이라크 바그다드 남동부에 위치한 고대도시)의 에-바라두르가라 신전에서 숭배된 샤라트-니푸리(Sharrat-Nippuri, ‘니푸르의 여왕’이라는 뜻)였다. 샤라트-니푸리는 카시트 시대(BC 1531년~BC 1157년) 토판에서 처음 등장했다. 샤라트-니푸리는 수메르 여신 닌-니브루(Nin-Nibru, ‘니푸르의 여인’이라는 뜻, 아카드의 벨렛-니푸리)와는 다른 신이다. 닌-니브루는 전쟁의 신 니누르타의 아내로 치유의 여신 굴라 또는 예술의 신 니님마일 수도 있다.

 

시두리에 해당하는 ‘술집 여자’는 이미 시파르(이라크 바그다드 남동부에 위치한 고대도시)에서 기원한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에 등장한다.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길가메시를 만난 시두리는 불멸을 추구하는 대신 죽음이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지상에서의 삶을 즐기며 가정을 꾸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이 조언에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시두리에게 자신을 우트나피쉬팀(슈루팍의 전설적인 왕으로 홍수에 살아남은 인간)에게 안내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 부분을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즐기라’는 라틴어)의 주제가 처음으로 기록된 사건이라는 해석도 있고 쾌락주의 철학의 시초라는 해석도 있다. 단순히 인생을 즐기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또 다른 학자는 ‘술집 여자’ 시두리가 길가메시에게 자신의 애도를 포기하고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행동으로 돌아가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태양신 샤마시(수메르의 우투)가 길가메시에게 불멸을 향한 탐구의 무익함에 대해 경고하는 동일한 토판에 기록된 장면은 이후 토판에서는 사라지지만 시두리의 조언과 매우 유사하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소위 ‘표준 바빌로니아’ 버전은 토판 Ⅹ의 첫 번째 줄에 시두리를 소개한다. 그녀는 또한 토판 Ⅸ의 마지막 줄에서 멀리서 길가메시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이름없는 사람과 동일시될 수도 있다. 그녀는 바다 가장자리에 가까운 선술집에 살고 있다. 그녀는 천으로 얼굴을 숨겼는데 이는 바빌론의 술집 여주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독자들에게는 그녀를 더욱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시두리는 처음에 길가메시를 잠재적으로 성가신 사냥꾼으로 착각하고 문을 닫고 지붕에 숨었다. 영웅은 처음에 문을 두드리며 위협하지만 시두리가 자신의 행방을 묻고 나서 자신을 소개하고 훔바바와 하늘 황소를 물리치는 등 자신의 다양한 업적을 설명하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그녀에게 우트나피쉬팀에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한다. 술집 여주인은 길이 험하고 ‘죽음의 물’보다 더 먼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설명하고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팀의 뱃사공인 우르샤나비(Urshanabi)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 버전에서는 그녀가 제공하는 여행 자체와 관련된 조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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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여주인 시두리가 제공한 조언의 변화는 토판 문서의 신아시리아 목록에 서기관으로 기재된 신-레키-운닌니가 도입한 혁신 중 하나일 수 있다. 신-레키-운닌니를 비롯한 목록에 기재된 작가들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표준판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나중 자료에서는 시대착오적으로 신-레키-운닌니를 길가메시와 동시대 사람으로 간주하지만 실제로는 카시트 시대에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라진 세 번째 버전의 장면에는 시두리가 길가메시와 결혼하겠다고 제안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추론은 어떤 근거도 없다.

 

시두리 구절의 오래된 버전이 구약 성경 중 하나인 <전도서>에서 알려진 좋은 삶에 대한 조언에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오랜 학문적 전통이 있다. 이 이론은 독일의 아시리아 학자인 브루노 메스너(Bruno Meissner, 1868년~1947년)가 만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일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성경 연구에서 이 두 문서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세계 문학의 공통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두 구절 모두 비슷하지만 술집 여주인이 고대 바빌로니아 토판에서만 길가메시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이후 버전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 길가메시와 술집 여주인 시두리의 만남이 <오디세이>에서 마녀 키르케와 오디세우스의 만남에 영감을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작가들이 메소포타미아 토판을 봤을 가능성에 부정적인 학자들도 있다. 오히려 고대 그리스 작가들이 메소포타미아보다는 서부 페니키아 문학 전통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이는 페니키아 문자와 달리 살아남지 못한 메소포타미아 설형 문자로 된 <길가메시 서사시> 토판의 일부가 그리스인들에게 전달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었다기보다는 각기 존재한 유사한 신화에 의존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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