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아난케, 운명과 숙명의 차이

2018년 4월 3일은 4.3이 70주년 되는 날이었다. 엄연한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3은 우리 사회 금기어 중에 하나였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4.3이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었음을 인정하고 4.3 희생자와 그 유가족에게 진솔한 사과를 함으로써 4.3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라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 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날임을 선포했다. 국가가 외면하고 왜곡한 4.3을 대중들이 처음 알게 된 데는 어느 노작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은 4.3의 진실을 폭로한 최초의 기록이었다. 현기영 작가는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3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국가가 숨기고 왜곡하려 했던 역사의 진실을 향한 노작가의 결연함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흔히 운명과 숙명을 혼돈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하지만 운명과 숙명은 전혀 다른 뜻이다. 운명은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있지만 숙명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말한다. 현기영 작가가 말한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은 '4.3은 내게 숙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불행을 행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운명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숙명이다. 옛 사람들도 운명과 숙명의 차이는 인지하고 있었나 보다.    


▲모이라이. 출처>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서 아난케(Ananke, 로마 신화의 네케시타스Necessitas)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즉 숙명의 여신이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모이라이(Moirae) 여신과는 분명 구별된다. 아난케는 신들조차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다. 아난케는 원래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했던 셈족의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노예와 죄인을 구속하는 사슬이나 멍에'를 뜻하는 '카낙(Chanak)'이 그리스로 전파되면서 생긴 개념이라고 한다. 아난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태초에 스스로 우주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초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아닌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굳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숙명의 여신 아난케는 때로 태초의 우주 카오스의 어머니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난케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결합해서 대기의 신 아이테르와 어둠의 신 에레보스, 빛의 신 파네스, 카오스를 낳았다고 한다. 또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의 어머니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마도 숙명이 가지는 절대불변의 개념이 투영된 탓일 것이다.


다시 4.3으로 넘어가면 사반세기가 다 되어 진실 규명의 첫 단추가 꿰어졌지만 아쉽게도 아직 정명(正名,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4.3 다음에 '사건'이니 '항쟁'이니 하는 이름 없이 4.3으로만 불리우고 있다. 여전히 4.3을 국가 권력의 폭력일이라는 본질보다는 이념 대결로 몰아가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기영 작가가 4.3을 '자신의 숙명'이라고 표현했듯이 4.3에 제대로 된 이름을 바로잡는 일, 정명을 찾아주는 일은 진실 규명, 치유와 함께 우리 사회에게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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