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닉스는 어떻게 야상곡이 되었나

음악 장르 중에 '야상곡'이라고 있다. 아일랜드의 작곡가 존 필드(John Field,1782-1837)가 처음으로 시작한 음악 장르로 한 밤의 정취를 담아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선율이 특징이라 '야상곡'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우울하고 침울한 분위기도 자아낸다고 한다. 필드가 야상곡을 처음 작곡했지만 쇼팽에 의해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피아노 소품으로 완성되었다. 야상곡의 또 다른 이름이자 영어 표현은 '녹턴(Nocturne)'이다. 로마 신화의 '녹스(Nox)'가 어원으로 그리스 신화의 '닉스(Nyx)'와 동일시되는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닉스는 밤을 의인화한 '밤의 신', '밤의 여신'이다. '녹턴'을 왜 '야상곡'이라고 번역했는지 쉬 짐작이 갈 것이다. 헤시오도스(Hesiodos, BC 740?~BC 670?)가 '신들의 계보'에서 언급한 닉스의 탄생은 다음과 같다.


'맨 처음 생긴 것은 카오스고 그 다음이 눈 덮인 올림포스의 봉우리들에 사시는 모든 불사신의 영원토록 안전한 거처인 넓은 가슴의 가이아와 불사신들 가운데 가장 잘 생긴 에로스였으니, 사지를 나른하게 하는 에로스는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가슴 속에서 이성과 의도를 제압한다. 카오스에게서 에레보스와 어두운 밤이 생겨나고 밤에게서 다시 아이테르와 낮이 생겼났으니 밤이 에레보스와 사랑으로 결합하여 이들을 낳았던 것이다.' -<신들의 계보> 중에서 - 


밤의 여신 '닉스'. 출처>구글 검색


여기서 말한 '밤'이 바로 '닉스'다. 즉 닉스는 태초의 신들 중 한 명으로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결합해 대기의 신 아이테르와 낮의 신 헤메라를 낳았다. 또 남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홀로 개념이 의인화된 많은 신들을 낳기도 했다. 모로스(숙명), 케레스(파멸), 힙노스(잠), 타나토스(죽음), 모이라이(운명), 네메시스(복수), 아파테(기만), 필로테스(우정), 게라스(노화), 에리스(불화), 헤스페리데스(석양) 등이 닉스가 남성의 도움없이 홀로 낳은 신들로 하나같이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에리스가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사이에 조장한 불화는 훗날 트로이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문헌에 따라서는 모로스, 케레스, 힙노스 등은 닉스가 홀로 낳은 자식들이 아니라 에레보스와 결합해 낳은 자식들이라고도 한다. 닉스는 힙노스(잠), 타나토스(죽음)와 함께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살고 있다. 이곳은 또한 닉스가 에레보스와 결합해 낳은 낮의 여신 헤메라의 거처이기도 하다. 즉 밤과 낮이 한 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낮과 밤은 생겨났을까? 닉스와 헤메라의 거처가 지하세계 타르타로스인 것은 맞지만 둘이 동시에 머무르지는 못한다. 닉스가 타르타로스로 가면 헤메라는 지상으로 올라오고 반대로 헤메라가 타르타로스로 떨어지면 닉스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밤과 낮이 생기게 된 것이다.


'헤라가 제우스를 유혹하여 잠을 재운다. 그 틈을 타 포세이돈이 적극적으로 아카이아 군을 거들고 나서면서, 헥토르가 부상을 입고 트로이 군은 수세에 몰린다. 잠에서 깨어난 제우스는 전황을 다시 트로이 군에 유리하도록 고쳐 놓는다. 트로이 군은 아카이아 군의 함대 안까지 치고 들어와 맹렬한 공세를 퍼붓는다.' - <일리아스> 중에서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도 닉스가 등장하는데 호메로스는 닉스를 힙노스와 타나토스의 어머니로 소개한다. 트로이 전쟁 당시 제우스와 헤라는 각각 트로이 군과 그리스 연합군 편에서 대립하고 있었는데 닉스의 아들이자 잠의 신인 힙노스가 헤라의 부탁으로 잠시 제우스를 잠들게 했지만 나중에 잠에서 깬 후 이 사실을 안 제우스는 크게 분노했고 힙노스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판테온의 최고신조차 닉스와 그의 자식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밤의 노래' 야상곡과 '밤의 여신' 닉스에게서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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