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네이버 전속모델 전지현이 썼던 모자의 비밀

올림포스의 12신 헤르메스


대학 시절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 박찬호를 두고 꽤 많은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여서가 아니라 그가 출연한 CF광고 때문이었다. 박찬호가 특정 업체의 광고에 출연할 때마다 매출이 몇 십 % 증가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면서 광고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게 토론의 주제였다. 기존에 유명인을 이용한 광고의 가장 큰 목적이 브랜드 이미지 재고였다면 박찬호를 계기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을 이용한 광고가 매출과 직결되면서 광고의 목표가 다변화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삼성 마이젯 프린터의 전속모델이었던 전지현의 등장도 쇼킹한 장면 중에 하나였다. 이 광고 하나로 전지현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아직도 당시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광고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성공한 기업이 있었다. 바로 NHN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였다. 당시만 해도 네이버는 다음을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2004년 네이버는 카페인(iN)과 블로그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당시 광고업계 최고모델이었던 전지현을 전속모델로 결정했다. 날개가 달린 초록색 모자를 쓴 전지현의 모습을 담은 광고가 방송된 후 카페와 블로그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이 폭발했고 이를 계기로 네이버는 국내 1위 포털 사이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저 상큼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네이버의 광고 목적은 분명 포털 사이트답게 신속한 정보전달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이미지 즉 신속성을 떠올릴만한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네티즌이었다면 전지현이 쓴 날개 달린 모자를 보고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헤르메스(Hermes)가 쓰고 다니는 모자를 패러디했기 때문이다. 신화 속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이다. 전지현의 모자는 보다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헤르메스는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신으로도 유명하다. 


 ▲네이버 전속모델 시절 전지현. 사진>공감신문


전령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이었던 헤르메스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마이아의 아들이다. 헤르메스를 특징짓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독특한 외모다. 날개 달린 모자(페타소스, Petaso)를 쓰고, 날개 달린 신(탈라리아, Talaria)을 신고, 뱀이 감겨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케리케이온, Kerykeion)를 들고 있다. 또 하나는 제우스도 감히 할 수 없는 헤르메스만의 특권이다. 헤르메스는 신과 인간 중에서 유일하게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 여행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헤르메스는 페넬로페를 아내로 맞아 판(Pan)을 낳았고, 아프로디테와 사이에서는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를 낳았다. 헤르메스의 깔끔한 이미지와는 달리 자식들은 의외의 신들이다. 판은 산과 들판에 살면서 미소년이나 님페를 쫓아다니는 호색한이었고,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살마키스라는 님페의 짝사랑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가진 자웅동체가 되었다.


헤르메스는 태어나자마자 조숙하고 활동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요람에서 기어나와 마케도니아의 피에리아로 간다. 그곳에서 헤르메스는 아폴론의 소떼를 훔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아폴론도 헤르메스와 아버지가 같은 배다른 형제였다. 어쨌든 헤르메스는 훔친 소떼 중 몇 마리를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치고는 다시 요람으로 돌아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누워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폴론은 헤르메스에게 소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헤르메스는 끝까지 발뺌했다. 결국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중재를 요청하고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소를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이 때 헤르메스는 기막힌 흥정을 하는데 아폴론이 음악의 신이라는 점을 이용해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악기를 내놓았다. 음악의 신이었던 아폴론은 이 악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떼를 돌려받지 않기로 했고 날개 달린 지팡이인 케리케이온까지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일상에 남아있는 헤르메스의 흔적들


한편 헤르메스는 제우스가 이오와 바람을 핀 데 격분한 헤라가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킨 적이 있는데 제우스의 명령으로 이오를 구해 오기도 했고, 저승의 신 하데스가 납치했던 페르세포네를 그녀의 어머니인 데메테르에게 무사히 되돌려 보내주기도 했다. 또 헤라클레스가 저승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 사냥을 위해 저승에 가는 일을 돕기도 했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아 아내 에우리디케가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그녀를 하데스에게 안내하기도 했다.


 ▲헤르메스. 사진>구글 검색


영어 수요일(Wednesday)이 북유럽 신화의 오딘(Wodan)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문헌에서 오딘은 헤르메스의 로마 신화 버전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와 동일시 되어 나타난다. 즉 '오딘의 날'인 Wednesday는 '메르쿠리우스의 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라틴어로 수요일은 'Dies Mercurii(메르쿠리우스의 날)'이라고 한다.


태양계의 첫번 째 행성인 수성도 헤르메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수성의 영어식 표현인 Mercury가 바로 헤르메스의 로마신화 버진인 메르쿠리우스에 유래했다. 아마도 공전주기가 가장 짧기 때문일 것이다. 즉 가장 빨리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빠르게 움직이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쉽게 연상되었을 것이다. 원자번호 80번 수은(Hg)도 마찬가지다. 수은의 영어식 표현도 수성과 같은 '머큐리(Mercury)'다. 수은은 실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으로 액체로 존재하는 범위도 금속 중에서 가장 좁다. 이 말은 금속 중에서 가장 빨리 액체에서 고체로 변형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헤르메스가 수은의 어원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헤르메스는 행운의 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선물인 행운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요행만을 기다려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다. 행운의 신 헤르메스가 동시에 전령의 신이자 상업의 신이라는 것은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움직이고 도전하는 등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있어야 하다는 것을 신화는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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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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