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몇년 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프로그램 중에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를 다룬 드라마였다. 갈등의 종착지는 늘 가정법원이었고 매회 4주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지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끝내 가정법원을 찾게 된 부부갈등의 시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즉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도 있지만 고부갈등만은 칼로 무 썰듯 결코 봉합될 수 없는 미묘한 간극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딴 여자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상실감과 시어머니가 아닌 오로지 나만의 남자로 남아주길 원하는 며느리의 욕심은 늘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투영된 신화 속에서는 고부갈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게다가 고부갈등의 원인이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와 질투였다면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한편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고부갈등 이전에 사랑과 결혼의 시작이기도 했다.  에로스Eros의 연인 프시케Psyche를 험난한 시험에 들게 한 에로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Aphrodite가 그랬고 에로스와 프시케가 연인이 된 것도 아프로디테가 인간인 프시케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시기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세 명의 신과 인간 사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질투로 시작된 고부관계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 123~170년, 고대 로마)의 소설 <황금 당나귀>에 따르면, 어느 왕국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세 공주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막내 딸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남달랐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사람들은 아프로디테보다 프시케를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야 할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와 찬사를 프시케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아들 에로스를 불러 프시케가 비천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에로스가 늘 가지고 다니는 황금화살과 납화살을 이용하면 될 터였다. 프시케가 비천한 남자와 같이 있을 때 황금화살을 가슴에 꽂으면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될테니까. 


 ▲한밤중 어둠 속에서만 만났던 에로스와 프시케. 사진>구글 검색


에로스는 프시케가 잠들어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갔다. 프시케가 가엾긴 했지만 어머니의 명령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한참 바라보다가 실수로 화살촉이 프시케의 옆구리에 닿았고 놀란 프시케는 눈을 떴다. 잠든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눈을 뜬 프시케의 자태는 그야말로 소문대로였다. 프시케의 자태에 놀란 에로스는 황금 화살촉으로 자신의 몸을 찌르고 말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프시케의 방을 벗어났다. 하지만 황금 화살에 찔린 에로스의 가슴에는 이미 프시케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에로스가 다녀간 이후에 프시케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를 칭송했지만 청혼한 남자들은 없었다. 그 사이 고만고만한 미모의 두 언니는 이웃 나라의 왕자들과 결혼에 성공했다. 프시케는 혼자 지내는 날이 늘어만 갔다. 보다 못한 프시케의 아버지는 아폴론의 신탁을 물어보았지만 뜻밖의 신탁을 받고 말았다. 프시케가 괴물과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미래의 신랑, 괴물이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프시케의 아버지는 시름이 더 깊어만 갔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 신탁은 결코 거스릴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아름다움에 효심까지 지극했던 프시케는 아버지의 고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스스로 괴물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프시케, 에로스와 부부의 연을 맺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프시케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산꼭대기로 향했다. 산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프시케의 가슴 속에는 괴물 남편에 대한 공포가 커져만 갔다. 이 때 서풍의 신 제피로스Jephyrus가 프시케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골짜기로 옮겨 주었다. 골짜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니 큰 궁전이 나타났다. 프시케는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종도 있었고,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도 있었다. 어쨌든 이 곳에서 프시케는 신탁대로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날마다 한밤중에 들어왔다가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프시케는 남편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남편이 절대 자신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신탁에 의하면 프시케의 남편이 괴물이었으니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괴물의 정체가 에로스임을 알게 된 프시케. 사진>구글 검색


이런 날이 반복되자 프시케는 낮 시간이 무료하기만 했다. 그래서 제피로스에게 두 언니를 궁전에 초대해 달라고 부탁했고 제피로스는 곧바로 두 언니를 궁전으로 데려왔다. 두 언니는 화려한 궁전에서 살고 있는 동생이 부럽기만 했다. 급기야 프시케에게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 프시케의 언니들은 프시케가 아직까지 남편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는 프시케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오늘밤 등잔과 칼을 준비해서 숨겨두었다가 남편이 아폴론의 신탁대로 괴물이면 즉시 목을 베고 궁전을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날밤 프시케는 남편과 사랑을 나눈 뒤 남편이 잠이 들었을 때 숨겨두었던 등잔불을 켜고 남편을 비추어 보았다. 남편의 얼굴을 처음 본 프시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괴물은커녕 아름다운 얼굴에 양어깨에는 날개가 달린 에로스였기 때문이다. 프시케는 더 가까이서 남편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등잔을 에로스의 얼굴에 가까이 대려는 기름 한 방울이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지고 말았다. 잠에서 깬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원망의 말을 남기고는 순식간에 궁전을 떠나고 말았다. 프시케는 남편의 말을 믿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며 한없이 울었다. 프시케가 울음을 그쳤을 때 그녀가 있던 곳은 이미 화려한 궁전이 아니었다. 프시케는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메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맨 프시케는 곡식의 신 데메테르Demeter 여신의 도움으로 에로스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를 만날 수 있었고 에로스와 다시 부부의 연을 맺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프로디테는 화가 났지만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면 허락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임무였다.


프시케에게 주어진 세가지 임무, 이보다 더한 시집살이는 없었다.


첫번째 임무는 곡물 창고에 아무렇게나 섞여있는 보리, 밀, 기장, 콩 등을 종류별로 고르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에 다 끝내야 했다. 프시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임무였다. 하지만 프시케를 지켜보고 있던 에로스가 개미들을 시켜 창고 안의 곡식들을 종류별로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들의 도움으로 임무를 완수해낸 프시케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냉정을 찾은 뒤 두번째 임무를 내렸다. 두번째 임무는 숲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의 황금털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떼들은 태양의 기운을 받아 날카로운 뿔과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번째 임무도 강의 신의 도움을 받아 완수해 냈다. 양떼들이 태양의 기운을 받지 못하도록 그늘로 보내 쉬게 한 다음 황금양털을 깎으면 되는 것이었다. 


 ▲프시케의 뜻은 '나비' 또는 '영혼'이라고 한다. 사진>구글 검색


두번째 임무까지는 신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세번째 임무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하 세계로 내려가 하데스Hades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서 화장품 상자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신들도 한번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지하 세계인데 어찌 인간의 몸으로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망연자실한 프시케는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저승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가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즉 지하 세계로 통하는 스틱스강의 카론 영감을 설득하는 방법, 지하 세계를 지키고 있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피하는 방법 등이었다. 다만 페르세포네가 준 상자를 가지고 오는 도중에 절대 상자를 열어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원하다


프시케는 목소리가 시킨대로 해서 무사히 페르세포네의 상자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한 프시케는 그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신들은 어떤 화장품을 바를까 궁금했던 것이다. 급기야 프시케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상자에는 화장품이 아닌 잠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내 프시케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에로스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니 거의 시체나 마찬가지인 프시케를 발견하고는 잠을 수습해 상자에 넣고 프시케를 깨웠다. 어쨌든 에로스의 도움이 있었지만 프시케는 세가지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프시케가 탐탁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어머니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프로디테도 신중의 신인 제우스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프로디테의 암묵적인 허락으로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는 정식 부부가 되었다.


아무리 아프로디테의 허락이 있긴 했지만 에로스와 프시케는 신과 인간의 관계였다.  그래서 제우스는 프시케를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으로 만들어 주었다. 영혼을 뜻하는 영어 '사이키Psyche'의 어원이 바로 그리스 신화 속 프시케다. 한편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나비'라는 뜻이기도 하다. 영혼과 나비, 나비와 영혼. 어떻게 한 단어의 뜻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비의 탄생 과정을 보면 나비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충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다시 나비로 태어나는 과정이 영혼의 불멸성과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로스(사랑), 프시케(영혼). 불멸의 사랑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한편 에로스와 프시케가 부부의 연을 맺어 낳은 딸의 이름이 '기쁨'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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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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