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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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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이사부는 독도를 보았을까? 최근 일본의 영토분쟁 관련기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는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열도), 러시아와는 쿠릴열도를 두고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일본의 영토분쟁화 의도를 차단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공세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정부 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들도 적극적인 대응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극우세력들을 중심으로 독도 침탈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문서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다. 이는 시기적으로 보아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위한 급조된 문서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이전에도 한국과 일본 어느쪽이 독도를 실효적 지배를 했느냐..
시월엔.... 회색 빌딩숲 틈새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가을도 어느덧 겨울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9월 마지막 날이다. 가을 맛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매서운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건 인간의 욕심을 보다못한 크로노스의 분노일 것이다. 그래도 10월은 여전히 가을을 대표하는 달이 아닌가 싶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비단 어느 가수만의 향수는 아닐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고, 바람에 속절없이 하늘거리는 가녀린 코스모스도 볼 수 없는 이 도심 속에서 나만의 가을을 무엇으로 채워볼까? 아무래도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도 계절을 대하는 나의 의무는 아닐까? 연인의 손길보다 보드라운 갈바람과 팔등신 미녀보다 매혹적인 갈빛의..
나의 올 추석 최고로 보내는 법 아무리 먹고살기 팍팍해도 추석은 추석인가보다.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의 설레임보다야 더할 수는 없지만 명절을 대하는 기대만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하니 아직도 순수함이 미약하나마 남아있어서일까? 낀 월요일과 금요일 탓인지 벌써부터 추석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해외로 나가려는 이들도 만만히 않은 듯 방송은 벌써부터 추석 분위기 띄우기에 한창이다. 어느 때보다 궁핍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추석만큼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라는 조상들의 지혜를 즐기려는 게 우리네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올 추석이 불과 이틀의 휴가만이 주어졌으니 주말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애써 추석과 주말을 구분하고 싶은 건 추석이 주는 넉넉함 때문이 아닐까? 올 추석은 고향 가는 것도 전화 한 통으로 대신했다...
이 가을, 긴 여운이 남는 책은 어떨까? 법정스님의 말을 빌자면 '양서란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힘들어일 수도 있고 다시 읽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책을 과감히 덮을 수 있는 결단력은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책읽기가 심적 부담이 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면 책꽂이 위의 책을 펴보는 것도 수월해지기 마련이다. 또 독서를 하다보면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책,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 업무나 학습을 위해 꼭 필요한 책 등이 바로 그것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긴 여운이 남는 책들이다. 다시 법정스님의 말을 빌자면 책읽기를 즐기는 독자들 누구나 '늘 가까이 두고 읽는 책'이 있을 것이다. 독서의 깊이가 별볼일 없는 나에게도 자주 읽는 책..
인간성 상실의 막장 드라마, 낙인찍기 한국사회처럼 '낙인찍기'가 성행하고 위력을 발휘하는 국가가 있을까 싶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해체된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좌파', '좌빨'이라는 낙인찍기는 여전히 정치적인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특정지역에 대한 조장된 이미지를 활용한 지역감정 조장도 낙인찍기의 또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낙인찍기는 집단린치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낙인찍기의 심각성은 단순히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이전투구이기 전에 권력과 언론이 부추기고 조장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사건에서 권력과 언론이 자행했던 낙인찍기의 몰인간성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낙인찍기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미국 유명 소설가, [큰바위 얼굴]의 저자, 너새니얼 ..
[햄릿]의 주옥같은 명대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세계적인 대문호답게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주옥같은 명대사들로도 유명하다. 고전 [햄릿]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연극 [햄릿]을 보지 않았더라도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쯤은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아니 각종 미디어를 통해 때로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인용하는 [햄릿]의 명대사임에 분명하다. 한가지 안타까움이 있다면 이 대사를 처음 접했던 게 [햄릿]이라는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학교 영어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각박하고 모순된 현실인가! 감수성이 차고도 넘칠 청소년 시절을 교과서 속 세상에만 갇혀 사는 아니 그 세상만 강요하는 현실에 긴 아쉬움과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직접 읽어보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이런 주옥같은 대사가 탄생..
소크라테스가 닭 한마리 빚진 까닭은?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 플라톤의 [파이돈]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 통한다. 그의 능력이 얼마나 신통했던지 죽는 사람까지 살려냈다고 한다. 누군가 죽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노여움을 산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면 감사의 뜻으로 아스클레피오스신에게 닭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대단한 역설이 아닌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의술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다니....또 이 얼마나 당당한 포스인가! 예수, 석가,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소크라테스다운 의연함이 돋보이는 극적..
막내인 '제우스'가 맏이가 된 사연 과거 농경사회에서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처럼 많은 자식은 경쟁력이었다. 더불어 신부감도 골반이 펑퍼짐해서 애를 순풍순풍 잘 낳을 것같은 여성을 최고로 쳤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다시 산업사회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중공업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대가족은 국가경쟁력 악화의 주범 취급을 받아야 했다. 둘도 많다는 구호가 난무했다. 누가 그랬던가! 역사는 반복된다고....고도로 정보화된 지식산업사회인 지금 많은 자식은 다시 국가경쟁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급격한 노령화에 따른 노동인구의 감소가 사회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로 기억되는 가족계획이 한국경제의 부담이 될거라니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싶다. 재밌는 신화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 시작하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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