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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내가 문고를 즐겨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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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브들리헤드 출판사 편집장이었던 앨런 레인(Allen Lane)은  어느날 세계적인 여류 추리 소설가인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를 만나고 돌아오던 기차역에서 가판대에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것을 보고는 대중이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앨런 레인의 꿈은 펭귄 북스(Penguin Books)라는 세계적인 출판사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펭귄 북스가 출판史에서 가지는 의의는 그동안 고급 양장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도서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페이퍼백(Paperback)이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페이버백이란 표지도 종이를 사용하고 본문도 중질지 이하의 용지를 사용하는 현대의 책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도서보급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펭귄 북스의 페이퍼백은 우리나라에서는 '문고본'이라는 이름으로 60,70년대에 널리 유행하게 되었는데 점차 휴대하기 편한 사이즈가 축소된 책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아쉽게도 최근에는 문고본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대형서점을 가봐도 '문고 코너'가 있긴 하지만 고작 기둥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게 전부일 정도다.

그렇다면 문고 시장이 지금처럼 위축되는 이유는 뭘까? 앨런 레인이 도서의 대중화를 기치로 페이퍼백을 선보인 의도와 달리 독자들에게는 은연중에 현학적 독서 행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도심 속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며 책을 읽는 장면들을 종종 본다. 우리에게는 왠지 어색한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문고를 즐긴다. 특히 예전부터 범우 문고를 즐겨 읽었는데 최근 추가 구매를 하려고 하면 품절 메시지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것도 장기간...아마 여러 경영상의 문제로 추가 출간이 되지 않는 듯 싶다. 문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내가 문고를 즐겨 읽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지만 많은 독자들이 문고 읽기의 즐거움을 공유했으면 한다.


주머니에 쏙!

문고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휴대의 간편성이 아닐까? 즉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길거리에서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신기한 시선을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일상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뻘줌하게 낭비한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다. 

물론 음악 듣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발적인 문화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 더 적절한 이유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음악만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 중에는 책을 읽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든 것 뿐이다.

주머니에 넣은 책 때문에 스타일 좀 구기면 어떤가! 개성시대인데 자기만의 스타일로 연출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두께가 주는 부담이 싹!
아무리 독서광일지라도 책을 보는 순간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책의 두께는 여간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독서를 제일 취미로 자부하지만 여전히 책두께는 커다란 위압감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결코 넘을 수 없는 막다른 장벽 앞에 선 나를 보는 듯...결국 완독하고 책을 보면 앞부분은 흐물흐물한데 뒷쪽은 여전히 새로 산 책처럼 빳빳한 상태로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책을 쉬 접하지 못하고 있다면 문고를 읽어보기 바란다. 분량도 기껏해야 100~150 페이지인 문고가 대부분이고 내용 또한 머리카락 쥐어뜯을 일 없으니 말이다. 문고 출현의 진정한 의도가 아닐까싶다.

또 대부분의 문고가 페이지의 한계로 정본의 요약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운 예습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인터넷 시대 혹자는 활자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활자의 따뜻함을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전자책을 머리로 읽는다면 활자책은 가슴으로 읽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니 벌써 출근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어제 버스에서 마저 읽지 못했던 플라톤의 [파이돈]을 바지 뒷주머니에 꽂는 것으로 출근을 준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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