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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가스통 할배들을 위한 이유있는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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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의 <>/2011

원덕씨의 쓸쓸한 죽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원덕씨는 예순 여덟 해 인생의 절반을 살기 위해 온몸을 피가 나도록 긁어야 했고 수면제와 진통제가 같이 들어있는 약을 과다 복용해 환영이 보이고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원덕씨는 젊은 날 자신의 모습을 슬프게 바라보며 메마른 그의 눈에 마지막 눈물을 머금고는 그렇게 아픔[] 없는 세상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그가 숨을 내려놓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하늘에서 낮게 날아오는 C-123기였다. 오렌지 온다! … 긴 날개에서 하얀 액체가루가 뿜어져나오는 모습이 포근한 구름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 희뿌연 안개가 밀림을 뒤덮었다. 하얀 가랑비가 천지사방에 뿌려졌다. 병사들은 하늘에서 날리는 액체를 서로 더 받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비행기가 뿌려대는 하얀 비가 밀림의 고약한 모기들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지나가고 구름이 내려앉은 자리에는 나무들이 말라죽으며 밀림이 사라졌다. -<> 중에서-

백가흠의 소설 <>에서 죽는 날까지 원덕씨를 괴롭혔던 가려움증의 원인은 원덕씨의 젊은 날 회상을 통해 그 정체가 밝혀진다. 농작물의 수확을 쉽게 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쟁 중에 적의 식량이 될 수 있는 농작물이나 적의 은폐 지역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다는 고엽제가 바로 그것이다. 병사들이 오렌지가 온다!’라고 외쳤던 것은 고엽제의 주요 성분인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화합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 <>은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뒤 고엽제 후유증을 앓다 죽은 파월 장병 원덕씨의 얘기다. 소설 속 원덕씨는 최근 들어 심심찮게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는 일명 가스통 할배. ()은 원덕씨의 물리적 통증이기도 하지만 원덕씨가 시위현장에 내몰리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이기도 하고 사람을 배제한 채 이념 논쟁에 올인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고도 아이러니하게 전쟁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소설 <>은 그 사람들을 위한 이유있는 변명(?)이다. 그들은 왜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로 나와 자신들을 전장으로 내몬 독재자의 부활을 꿈꾸는 것일까?

가끔 언론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참전 군인들이 반전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본다. 어찌 보면 그들의 행동에서 당위성을 보게 된다. 전쟁의 참상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행동은 경험에서 오는 자연스런 반작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참전 군인들은 대표적인 우익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시위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때로는 가스통에 불을 붙여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거리, 사찰, 방송국, 신문사, 전직 대통령 관저 등 속된 말로 까라면 까라는 군인정신(?)으로 완전무장된 사람들처럼 보인다. . 전쟁의 참상 말고도 그들의 아픔[]은 국가와 일부 조직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덕씨는 어느 날 찾아온 파병 당시 선임이었던 김중사에 이끌려 집회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붉은 반점과 수포로 가득한 알몸을 내보이게 된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설은 그렇게 한 인간을 가장 비참한 나락으로 내몰고 있는 국가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참전 병사들은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 케미컬을 비롯한 7개 화학회사에 집단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한 참전국 병사들도 1988년 미국연방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국 다음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던 한국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심지어 1984년 미국의 고엽제 제조회사들이 에이전트 오렌지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합의했을 때도 한국 언론은 침묵했다.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고엽제 피해 병사들을 철저하게 이용해 먹은 셈이다.

김중사는 그의 알몸이 필요할 때만 간혹 찾아왔다. 세상이 바뀌자 살 만해진 모양이었다. 몇 년간 가로채던 지원금도 더 이상 가져가지 않았다. 선심을 쓰듯 그의 몫으로 나온 정부의 지원금을 그 앞에 돌려주었다. -<> 중에서-

한편 권위주의 정부가 그들의 편의에 따라 이용함으로써 참전 병사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편협한 시각 즉 이분법적으로 사회를 보는 왜곡된 시선을 갖게 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사회는 바로 전장으로 적군과 아군만이 존재할 뿐이다. 문제는 적을 이롭게 해서 적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면 모두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붉은색과 붉은색이 아닌 두가지 색만이 존재하는 셈이다.

 

, 모두 진격하라. 빨갱이 신문사를 다 때려부수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은 대령의 명령이 떨어진 후였다. 여기저기서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고, 한 무리는 정말로 신문사를 향해 돌격했다. -<> 중에서-

소설 말미에 원덕씨의 주검을 발견한 김중사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그대로 집을 나가버린 장면은 국가폭력의 냉혹함을 형상화해 주고 있다.

군대 용어 중에 피아식별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에게 적은 평화가 아니다. 그들의 적은 전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들을 전쟁의 참혹함 속으로 내몬 세력들과 그 후예들은 세상이 바뀌어 할 수 없는 색깔 논쟁을 참전 병사들을 통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통()이다.

고엽제는 베트남 전쟁에서만 무차별적으로 살포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전쟁 중에도 또 전후에는 미군부대 주변에 고엽제를 매몰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고엽제 전우회에서는 그 흔한 성명 하나 내놓은 걸 보지 못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단체인지, 권위주의 정부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고엽제 피해자들이 오늘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스통 할배들, 그들 또한 왜곡된 역사와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아니겠는가.

원덕씨는 죽어서야 비로소 국가에 의해 자행된 아픔[]에서 해방되었는지도 모른다. 원덕씨가 마지막으로 본 자신의 모습은 신이 나서 비행기가 날리고 간 하얀 비를 받아 몸에 바르는 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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