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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1909~1948)<인간실격>

 

여기 세 장의 사진이 있다. 귀엽게 생긴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사진이지만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뜯어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불길한 것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사진은 어엿한 청년이 된 그 아이의 사진이나 어쩐지 괴담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마지막 사진은 어른이 된 그 아이가 분명한데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화로에 손을 쬐고 있는데 그대로 죽어버린 듯한 음산하고 불길한 인상을 풍기는 사진이다. 전후 일본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본 이 세 장의 사진 주인공은 다름아닌 '요조'라는 사람이다. <인간실격>은 이 세 장의 사진에 얽힌 요조의 에피소드를 모은 액자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친절하게도 후기를 통해 이 수기를 쓴 광인(狂人)이 자기가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설명까지 덧붙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요조의 이야기가 오사무의 그것이었다는 것을, 게다가 추악한 세계를 아둥바둥 살아가는 나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여태 이렇게 충격적인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 소설 전체를 흐르고 있는 요조의 기이한 행동들을 거부하면 할수록 나나와 요조는, 나와 다자이 오사무는 혹시 한 배에서 난 쌍둥이는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요조를 비난하면 할수록 비수에 꽂힌 듯 한 켠에 밀려오는 알 수 없는 통증은 가슴을 움켜쥐게 한다. 애써 나와 요조를 떼어버리려 하지만 이미 나약해져 버린 나 자신만을 보게 될 뿐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가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인간실격>에는 니힐리즘(Nihilism)의 향기가 진하게 흐른다. 니힐리즘은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1818~1883)가 그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절대적 진리와 도덕은 없다는 일종의 허무주의를 말한다. 니힐리즘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20세기 들어 빠르게 확산되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소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y, 1821~1881)를 언급한 것도 그의 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자이 오사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육이었다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나고 자란 완벽한 전쟁세대 중 한 명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은 내 귀에는 그저 불쾌한 위협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신은 항상 내게 불안과 공포를 몰고 왔습니다...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직까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내가 가진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이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는 불안감, 나는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고 자칫 미쳐버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인간실격> '첫 번째 수기' 중에서-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고, 아예 완전히 잘못 보았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인간들, 혼돈스러운 선과 악의 구분, 이런 세상을 무리없이 살아가기 위해 요조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광대짓이었다. 아니 요조는 광대짓이 아니고는 이 추악한 세상을 벼텨낼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세상은 광대짓만으로 벼텨내기엔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급기야 요조는 술과 마약, 매춘에 빠져 처절한 인간 실격자가 되고 그 마지막 탈출구로 자살을 시도해 보지만 이는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요조가 광인이 아니고는 버틸 수 없었던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 늘어서 사람들은 대게 마흔 넘은 나이로들 봅니다. -<인간실격> '세 번째 수기' 중에서-

요조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연인 요시코가 강간당한 그날 요조는 인간으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인간 실격자가 된 것이다. 그 때 요조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다. 1936년 다자이 오사무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하고 그의 첫 아내 하쓰요가 다른 남자와 범한 사실을 알게 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 때 다자이 오사무의 나이도 소설 속 요조와 같은 스물일곱 살이었다고 한다.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스물일곱 살에 멈춰버린 다자이 오사무의 통렬한 의식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인간실격>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요조의 그림처럼 음침하고 우울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조가, 다자이 오사무가,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고 살아갈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요조가 소설 말미에 했던 말처럼 인간 세계에서 진리는 단 하나뿐인데 우리는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고뇌하며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이 글은 서평사이트 북곰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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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