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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손자병법, 병법서로만 보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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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영국의 명장으로 연합국 사령관을 지냈던 몽고메리가 1961년 9월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을 만난 자리에서 전 세계 군사 아카데미와 사관학교의 교재로 삼자고 제안한 고전이 있다. 바로 손무(BC535년~BC480년)의 <손자병법>이다. 우리에게는 손자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세계적인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몽고메리가 왜 하필 수많은 병법서 중에서 2,500년이나 지난 <손자병법>을 그렇게 극찬했을까? <손자병법>에는 전쟁에서 이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는 전쟁은 피하는 게 최상책이다. 그러나 일단 어떤 형태로든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이기는 것이 미덕(?)이다. 윤리를 논하고 도덕을 논하는 공자와 노자가 평시에 위대한 사상가라면, 전시에는 손무만한 위대한 사상가도 없다. 승리를 위해 비열한 권모술수를 주장했다 하더라도...전쟁에서는 패자의 눈물이란 없기 때문이다. 지면 모든 게 끝이다.

<손자병법>의 전략과 전술은 현대의 전쟁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되는 병법이다. 그러나 기껏 고전을 탐독하고 나서 살상을 전제로 한 전쟁에만 적용한다는 것이 탐탁치만은 않다. 군대에서야 지휘관들이 필독서로 읽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짜는데 유용한 지침서로 활용하면 된다지만 군인이 아닌 우리들은 캐캐묵은 병법서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병법서라는 이유로 손때 묻히기를 거부한다면 고전을 읽는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고전을 읽는 재미는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혜의 함양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는 <손자병법>이 거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악전고투가 필시 전쟁과도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CEO들을 제외한 우리는 <손자병법>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고전이 우리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한번쯤 고민해봐야 될 문제이기도 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병법>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아는 명언이다. 리더가 되던 아니면 그냥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는 불변의 진리다. 공동체 리더에게 얄팍한 지식은 치명타다. 또 리더가 아니더라도 점점 복잡해져 가고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앎은 자신을 지탱시켜 주는 힘이다. 손무는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모든 제반 지식을 총망라해야 함을 강조한다. 왜? 아무리 강력한 힘을 자랑하더라도 상대와 나의 현실적 전력을 알지 못하는 패배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하려면 전투용 수레 1천대, 물자 수송용 수레 1천량 그리고 무장한 병사 10만명을 출동시키고 아울러 천리나 되는 머나먼 길에 식량을 운반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전방과 후방에서 소요되는 각종 경비 지출, 외교에 필요한 국빈과 사절의 접대, 기재와 물자, 전투용 및 물자 운반용 수레를 포함하여 병기 장비의 수선과 보충에 필요한 비용까지 합쳐서 하루에 천금이라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써야 하며,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10만 대군을 출동시켜 전쟁할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다시 말해 신상필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체벌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그러나 체벌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칭찬이다. 잘했을 때 아낌없는 칭찬만이 체벌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칭찬이 인색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체벌은 당사자에게 모멸감과 따돌림이라는 자괴감만을 줄 뿐이다. 사랑의 매란 상벌이 확실한 때라야 성립한다.

손무가 강조한 신(信)이라는 것도 상벌 시행의 믿음이며 속임없는 성실함을 의미한다. 군대를 다스림에 있어 신이란 바로 상을 주어야 할 때는 자기와 먼 사람이라 해도 포상을 하고, 벌을 주어야 할 때는 가까이서 신임하는 사람이라 해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제갈공명이 군령을 어기어 싸움에서 패한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참형에 처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속은 제갈공명이 가장 아낀 장수로 군기를 엄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제갈공명의 지략이 빛났던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금성무가 제갈공명을 열연했다. 영화 <적벽대전> 캡처

주변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손무가 장수의 요건으로 꼽은 것 중에 인(仁)이 있다. 공자의 핵심 사상이 병법서에 중요한 항목으로 들어가 있다니 좀 의아해 진다. 손무가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다지만 지금처럼 인쇄출판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자의 사상을 배웠을 리 만무하니 더더욱 경외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동료에 대한, 하급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공동체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기본이다. 또한 상대방의 나에 대한 믿음은 사랑과 관심 없이는 결코 형성될 수 없다. 노동자를 일개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회사에서 어떻게 생산성이 향상되겠는가!

손무는 <손자병법>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장수는 병사들을 어린아이처럼 보살펴준다. 그럼으로써 병사들이 장수를 따라 깊은 골짜기에 함께 뛰어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는 병사들을 사랑하는 친자식처럼 돌보아준다. 그럼으로써 병사들이 장수와 더불어 생사를 같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고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손자병법>을 재해석한 저자의 말대로 포기란 깊고 원대한 모략이자 관용을 품은 지혜다. 배가 전복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욕심 때문에 적재량을 초과해서 싣는 것은 우직함이 아니다.

손무의 ‘우직지계(迂直之計)는 포기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용기다.

"가까운 길을 먼 길인듯 가는 방법을 적보다 먼저 아는 자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원칙이다. 군쟁(軍爭)의 어려움은 돌아가는 길을 직행하는 길인듯이 가고 불리한 우환을 이로움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 길은 돌기도 하고, 미끼를 던져 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상대방보다 늦게 출발하고서도 먼저 도달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우직지계를 아는 사람이다."

열린 사고를 가져라

손무의 군사 사상에서 가장 특색있는 것이 기정지술(奇正之術)이다.

“무릇 전쟁이란 정병으로 적과 맞서 싸우되, 기병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예상밖의 군대를 출동시켜 결정적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다. 나쁘게 표현하면 권모술수다. 그럼 우리는 이런 권모술수를 배워야 한단 말인가? 처음에 언급했듯이 고전을 읽는 맛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새롭게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군인이 아닌 이상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우리 생활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수반할 수 있어야 제대로 고전을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화공법을 생각해내지 않았다면 조조를 이길 수 있었을까? 제갈공명의 열린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최근에 우리 교육도 과거의 암기위주에서 탈피해 학생들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 방법들이 도입되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하나의 신념과 믿음에 매몰되어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게 진리다.

<손자병법 교양강의>의 저자 마쥔은 <손자병법>을 자구대로 해석하여 현대전에 운용하려 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책’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자병법> 강의를 수락한 것은 그 실용성 때문이다. 군사학 뿐만 아니라 무한경쟁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 일반인도 <손자병법>을 잘 응용하면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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