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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나는 평양석공조합 대표 박창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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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송영의 『석공조합 대표』/「문예시대」2호(1927.1)/창비사 펴냄

현정부 초기 한국노동연구원 박기성 원장이 헌법에서 노동3권을 빼야 한다고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합리적인 노동정책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망언이었다. 본인의 소신이었던지 아니면 집권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과욕이었던지 노동자를 바라보는 천박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노동자의 권리이기 전에 약자가 강자에 대항하기 위한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그나마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천박함은 비단 국책연구기관 수장뿐이 아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재벌 삼성,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아니 노조결성을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무산시키곤 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랑하는 삼성에서 말이다. 언론은 어떤가? 귀족노조니, 노조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느니 하면서 권력과 자본의 노동자 탄압에 첨병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힘을 갖게 되면 강자의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현실에 숨이 턱 멎을 지경이다 

 

송영의 소설 『석공조합 대표』는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의 현실 변혁 가능성을 보여준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본명이 송무현인 송영은 그 자신도 노동자 출신이다. 그만큼 노동 현실에 대한 이상주의적 시선이 아닌 체험적 대안을 소설 『석공조합 대표』에서 제시하고 있다. 또 조합 결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일사분란하게 동지적 결합을 하는 과정은 그가 지향하는 현실 변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조합의 결집력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창호는 평양석공조합 대표다. 그의 처 구옥순 또한 XX고무공장의 여직공으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과원을 거두어가며 살고 있다. 문제는 아버지의 과원이 XX석공장의 사장이 소유한 땅이라는 점이다. 박창호는 지금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석공노동자 대회 참석을 앞두고 있다. 작가 송영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에 싫증을 내면서도 이를 버리지 못하는 모순을 평양석공조합 대표 박창호를 통해 깨부수려 하고 있다. 과연 박창호는 이런 모순을 깨고 스스로 이 땅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박창호에게 인간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내는 박창호가 평양석공조합 대표로 서울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만류한다. 석공장 사장의 포악함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지도 모르는 아버지와 아내를 생각하면 기가 꺾이고 만다. 한편 아버지와 아내는 박창호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박창호도 노동자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박창호는 동지 익진과 함께 서울로 떠난다.

 

, 북만주로 돌아다니면서 학교도 세우고 회도 모으고 하든 내가 아모러기로 너희들의 하는 일을 방해야 하겠니참말이지 너희들 어린것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기쁘고 거룩만 할 뿐이지.”  -『석공조합 대표』 중에서-

 

참 옳은 말이지. 자꾸 죽이는 놈에게 그저 조금만 더 두었다가 죽여줍쇼 하는 것보다 이놈 하고 일어나서 죽드래도 낫지 않을까?” -『석공조합 대표』 중에서-

 

그러나 강자의 회유와 협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서울로 떠나기 전 사장은 박창호를 불러 회유한다. 박창호의 굳은 의지에 사장은 협박까지 한다. 사장은 박창호 아버지의 과원 주인이다.

 

그래. 나는 이해상관이 실상은 없다고 그러자. 그렇지만 뻔히 너도 모르는 터도 아니고 하니까 너의 집안 사정을 봐서 그러는 말야너 부모나 처자가 얼어 죽으면 네 생각은 시원하겠다.” -『석공조합 대표』 중에서-

 

박창호가 서울로 떠난 지 닷새 되는 날 사장은 집에 찾아와서 과원을 빼앗고 힘없는 아버지를 폭행하기에 이른다. 결국 늙은 아버지는 자본의 폭력에 숨을 거둔다. 작가 송영은 약자의 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가의 이런 의지는 박창호의 아내 구옥순의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 왜 우리 아버님을 때려. 내노면 그만이지우리가 너 집 아니면 못살 듯하냐!” -『석공조합 대표』 중에서-

 

이 시간 서울 구리개 광무대 안에서는 대회를 원만히 마쳤다는 최후의 만세소리가 들린다. 박창호는 싫증을 내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모순을 깨고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나고 있다.

 

20세기 초 평양석공조합 대표 박창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사회의 모순을 딛고 일어서려 하고 있다. 석공장 사장의 회유와 협박은 더 교묘해지고 영악해졌다. 더구나 갖가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석공장 사장의 뒤를 봐주고 있다. 그러기에 모순으로 점철된 현실에 대한 박창호의 변혁을 향한 꿈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20세기 석공장은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 허울좋게 옷만 갈아입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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