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민우의 전향은 진심이었을까?

반응형

 

[20세기 한국소설] 중 한설야의 『이녕』/「문장」4호(1939.5)/창비사 펴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이하 카프)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제는 두 차례의 사상 탄압을 감행했다. 1931 8월 도쿄에서 발행된 [무산자]의 국내 유포와 영화 [지하촌] 사건이 발단이 된 제1차 카프검거사건이 있었다. 1934년에는 전북 금산(현재는 충남)에서 일어난 신건설사 사건으로 80여 명의 맹원이 검거된 제2차 카프검거사건이 있었다. 한설야는 제2차 카프검거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그 해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한설야의 소설 『이녕』은 시기적으로 두 차례의 사상탄압이 있은 뒤 발표된 소설이다. 좌파 작가들에게는 그만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정제된 언어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이녕』도 이런 시대적 배경 탓인지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에둘러 작가의 사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당시 사상탄압으로 검거된 지식인들이 전향서를 쓰고 석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주인공 민우도 그런 지식인 중의 한 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설 『이녕』은 당시 그런 전향자들이 어떻게 일상에 적응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또 그 이면에는 여전히 자신의 사상적 신념을 포기할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있다이녕진창이란 뜻이다.

 

주인공 민우의 삶은 전향서 한 장으로 어떻게 바뀌었을까? 또 그의 전향은 진심이었을까?

 

이녕은 민우가 바라보는 세상이기도 하고 민우의 뒤틀린 일상이기도 하다. 비록 전향서를 쓰고 출옥했다고는 하나 그는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을 한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없다. 하루 아침에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기에는 약한 성격이지만 제 맘에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한때 그 서슬에 눌리고 무섬을 타면서도 한 대목 늦어지면 속으로라도 욕하고 미워해야 하는 것이 민우의 성격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나중은 민우더러 글까지 쓰지 말라는 거다. “글 없는 사람은 글이 필요할 때면 아무 데 가서도 돈 안 주고 얻어오지만서두 곁집에 도끼 빌리려 가면 있구두 없답디다. “ 하고 거증하는 아내는 사실 민우가 감옥으로 가 있는 사 년 동안에 글보다 장작 팰 도끼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육신으로써 체험했던 것이다. 민우도 그만 것은 듣지 않아도 잘 안다. -『이녕』 중에서-

 

민우는 보호관찰소 타무라를 찾아 취업을 알선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보는 세상은 진창이다. 비슷한 처지의 남편을 둔 동네 아낙들의 수다에서 사람의 지혜를 반죽해주려는 무서운 우치의 세계를 보고 있는 민우다. 길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도 민우의 눈에는 기왕에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전 그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록 전향서는 썼다고 하나 변하지 않는 그의 신념은 밖에서 맞고 들어온 자식들을 나무라는 데서 여지없이 나타난다.

 

나뿐 놈이면 이로 물어뜯어도 좋고 돌멩이로 대가릴 까도 좋지. 웨 되레 얻어패고 울여불며 집으로 쫓겨 들어오느냐 말야. 맞어 죽는대도 불쌍한 꼴 하고 죽는 놈 하나도 불쌍할 거 없어. 기왕 죽을 바이면 우는 대신에 악을 써보는 게 옳지. 울면 무슨 소용이란 말여.” -『이녕』 중에서-

 

나약한 자신에 대한 자책이다.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민우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몰고 온 이는 다름아닌 감옥 동기였다. 보호관찰소의 도움으로 도청 사회과에 취직한 박의선을 보면서 민우는 현실에 순응해 버린 그래서 그렇게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그의 아버지 모습을 본다. 그리고는 문득 관 속에 누운 자기를 생각한다. 갖가지 빛깔로 화려하게 장식된 자신의 이력을 떠올리면서 그는 몸소름을 친다. 현실과 타협만 한다면야 무얼 해도 할 수 있는 그지만 싫다. 그는 차라리 관 뚜껑에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신념과 사상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민우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족제비의 공격을 받아 꼭 죽을 것만 같던 닭이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몸을 가누는 것이다. 그는 닭을 통해서 그의 삶도 신념도 포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침에 민우는 닭이 눈을 뜨고 몸을 좀 가누는 것을 바라보며 타무라에게로 가던 어제 아침과는 반대로 매우 유쾌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이녕』 중에서-

 

전향소설로서의 『이녕』이 보여주는 가장 특징적인 점은 바로 전향 지식인 민우가 보여주는 현실과의 투쟁이다. 그의 지향점이 삶에 대한 의욕인지 아니면 신념의 회복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전향 지식인의 의지는 한설야 자신이 변함없이 추구했던 경향작가로서의 자긍심인지도 모른다.

 

덧붙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전향서와 보호관찰이라는 제도가 여전히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의 유물을 21세기인 오늘에도 버리지 못하는 제도적 후진성에 분노 이전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까짓 각서 한 장으로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권력의 발상에 비열함마저 느껴진다. 권력의 속성이 아무리 억압과 탄압이라서 몸은 가둘 수 있다지만 정신은 가둘 수 없는 법이다. 사상이나 신념을 포함한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로 가는 척도다. 자유가 그들만의 자유는 아니지 않는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