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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알크메네가 헤라클레스를 낳기 위해 9일 동안 진통을 겪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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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⑬ 알크메네

 

<이솝 우화>족제비와 아프로디테라는 이야기가 있다. 족제비가 어느 잘생긴 청년에게 반해 자기를 여인으로 바꿔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다. 아프로디테는 족제비의 연정을 가엾게 여겨 예쁜 소녀로 변신시켜 주었다. 청년은 족제비가 변한 소녀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방에서 쉬고 있을 때 아프로디테는 족제비가 소녀로 바뀌면서 성질도 바뀌었는지 알고 싶어 방 한 가운데에 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소녀는 지금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쥐를 잡아먹으려고 뒤쫓았다. 여신은 이런 소녀의 행동이 못마땅해서인지 다시 족제비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사악한 본성을 가진 사람은 외모가 바뀌어도 그 성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실제로 족제비는 호기심과 욕심이 많고 성격이 급하면서도 사납다고 한다.

 

족제비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지 고대 그리스인들은 족제비가 귀로 임신해서 입으로 새끼를 낳는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이솝 우화>를 쓴 고대 그리스의 우화작가 아이소포스(Aisopos, BC 620~BC 560) 말고도 고대 그리스인들의 족제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를 낳은 알크메네의 출산 과정에 족제비가 등장하는데 헤라클레스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제우스다. 바람둥이 난봉꾼 제우스의 불륜 행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진>구글 검색

 

알크메네(Alcmene)는 미케네 왕 엘렉트리온의 딸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알크메네는 미모와 지혜를 겸비한 여인으로 필멸의 남자와 필멸의 여자가 몸을 섞어 낳은 어떤 여인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 알크메네는 어머니 아낙소와 남매 지간인 암피트리온과 결혼했는데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런 여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본 신이 있었다. 제우스였다. 제우스는 알크메네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알크메네의 남편 암피트리온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에 그의 모습으로 변신해 알크메네의 침실을 침입했다. 그야말로 신 중의 신 제우스를 불륜의 끝판왕으로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다. 알크메네의 침실에 들어간 제우스는 불이 꺼진 상태에서 알크메네의 의심을 풀기 위해 전리품을 선물로 주고 전쟁터에서 싸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알크메네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제우스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

 

다음날 전쟁터에서 돌아온 암피트리온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알크메네와 잠자리를 가졌고 얼마 뒤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그들이 바로 이피클레스와 헤라클레스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말았다. 암피트리온은 어떻게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확신했을까? 헤라는 알크메네가 자신의 남편인 제우스의 아들을 낳자 쌍둥이가 누워있는 방에 독사 두 마리를 풀어 쌍둥이를 죽이려고 했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들리자 암피트리온은 재빨리 아이들 방에 들어갔는데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울고 있는 이피클레스와 달리 헤라클레스는 양손에 뱀을 한 마리씩 쥐고 있었다. 이때 헤라클레스의 나이는 겨우 생후 십 개월에 불과했다. 이 광경을 보고는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아내 알크메네를 장작더미 위에 묶어놓고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다. 다행히 제우스가 급하게 소나기를 내려 불을 껐고 나중에 제우스는 이 부부의 화해를 중재했고 훗날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를 출산하는 알크메네. 사진>구글 검색


한편 알크메네가 헤라클레스를 출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헤라의 방해 때문이었다. 남편 때문에 헤라만큼 속을 썩힌 아내가 있을까. 헤라는 자신의 남편 제우스와 바람을 피워 생긴 아이의 출산을 막기 위해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 자매를 불러 출산을 막아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했다. 에일레이티이아와 모이라이는 알크메네의 산실 문턱에서 무릎을 감싸고 양손을 깍지 낀 자세로 주술을 써서 알크메네가 무려 9일 동안이나 진통하게 만들었다. 신이 남성의 일하는 고통에 견줘 여성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주었다고들 하는데 알크메네 만큼 출산의 고통을 경험한 여성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를 지켜보던 알크메네의 몸종 갈린티아스가 꾀를 내었다.

 

갈린티아스는 알크메네의 산실을 뛰어나가면서 제우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다고 소리쳤다. 문턱에서 알크메네의 출산을 방해하는 주술을 쓰고 있었던 에일레이티이아와 모이라 자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에일레이티이와와 모이라이는 놀란 나머지 출산을 가로막고 있던 주술을 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알크메네는 헤라클레스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신들은 자신들을 속인 갈린티아스를 족제비로 변신시켰고 그녀가 입으로 자신들을 속였으므로 앞으로 새끼를 낳을 때 입으로 낳는 고통을 주었다고 한다. 족제비가 귀로 임신해 새끼를 낳는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이 이 때부터 생겼는지 아니면 이 신화가 회자 되기 전부터 그렇게 믿어왔는지 알 수는 없다. 헤라의 방해로 극심한 출산의 고통을 겪었던 알크메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헤라의 별다른 탄압 없이 생을 마쳤고 제우스는 전령 헤르메스를 통해 알크메네를 엘리시온으로 데려다 주었고 그곳에서 알크메네는 라다만티스와 결혼했다고 한다.

 

참고로 엘리시온(Elysion)은 복된 자들의 땅으로 신들의 총애를 받은 영웅들이 불사의 존재가 되어 삶을 마친 뒤에 들어가는 땅을 말한다. 흔히 엘리시온 들판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유명한 거리 샹젤리제가 바로 엘리시온의 들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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