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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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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개똥참외 두 개를 남겨준 이유 문순태의 /1982년 대표적인 악법으로 비난받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일제 강점기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본따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이승만이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국가보안법은 여순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여순사건은 1948년 제주의 민중봉기 진압을 거부하고 38도선 철폐와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을 주장한 좌익계 군인들의 반란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기도 했다. 1982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문순태의 소설 은 여순사건과 그로부터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의 격랑 속에 발생한 가족 수난사를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전후에 일어났던 두 사건은 분명 이념적으로 유사한 접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가 두..
증인, 나는 당신이 그날 한 일을 알고 있다 박연희의 /1956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장기집권 꿈이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다. 1954년 11월27일 국회는 3선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시켰다. 개헌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재적 의원 203명의 2/3인 136명을 넘겨야 했지만 참석의원 202명 중 찬성표를 던진 의원이 135명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틀 후 역사를 한 편의 코미디로 전락시키고 만 희대의 정치쇼가 벌어졌다. 자유당은 제적의원 203명의 2/3는 정확히 135.333…명으로 0.333…명은 존재할 수 없는 자연인이기 때문에 수학의 4사5입 법칙에 따라 반이 넘지 않으면 버리는 것으로 해서 의결 정족수는 135명이 맞다는 희한한 논리를 적용해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의 생생한 현장 기록 김학철의 /1946년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조직된 항일무장투쟁 부대인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옌안[延安] 지역으로 이동해 중국공산당과 연합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이 부대가 훗날 조선의용군의 모태가 되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무장단체인 조선의용군은 치열했던 항일 투쟁사만큼이나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고발해 주고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에서는 소위 말하는 '연안파 숙청'의 당사자가 조선의용군 출신들이었고 남한에서는 '반공'이라는 국시 아래 철저하게 외면당한 독립운동단체가 바로 조선의용군이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조선의용군을 비롯한 중국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무장투쟁단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세월과 시대의 외면 속에 당시의 기록들이 온..
월북과 탈북의 경계에 선 사람들 계용묵(1904~1961)의 /「동아일보」(1946.12.1~31) 이순신은 영웅이다. 존경하는 역사인물을 꼽으라면 늘 1,2위를 다툰다. 영웅은 신화로 비약한다. 누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절명의 순간에도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죽음마저 초월해 범접하기 힘든 성인의 경지에까지 올라갔다. 생물학적으로야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그는 살아있는 존재다. 인간과 신의 구분을 불멸에 둔다면 이순신은 신이다. 역사는 앞으로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수천, 수만의 범부(凡夫)들도 있을진대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역사는 굳이 그들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역사에는 영웅은 있을지언정 사람은 없다. 꿈에 그리던 해방, 환희로 가득찼던 해방 서울에는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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