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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의 생생한 현장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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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의 <균열>/1946년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조직된 항일무장투쟁 부대인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옌안[延安] 지역으로 이동해 중국공산당과 연합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이 부대가 훗날 조선의용군의 모태가 되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무장단체인 조선의용군은 치열했던 항일 투쟁사만큼이나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고발해 주고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에서는 소위 말하는 '연안파 숙청'의 당사자가 조선의용군 출신들이었고 남한에서는 '반공'이라는 국시 아래 철저하게 외면당한 독립운동단체가 바로 조선의용군이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조선의용군을 비롯한 중국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무장투쟁단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세월과 시대의 외면 속에 당시의 기록들이 온전히 보전되었을리 만무하다. 김학철은 조선의용군에 가담해 직접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이다. 소설 <균열>은 김학철 자신의 항일무장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체험소설이다. 

포악한 이념대립의 폭풍 속에서 잊혀져야만 했던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될 항일투쟁전사 김학철의 삶을 <균열>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오카리나와 수풍금

소설 속에서 갈등을 유발한 사건을 통해 조선 의용군이 중국 공산당과의 연합체적 조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시 군법회의에 회부된 중국 노인 로양의 처리를 두고 학천과 시광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오카리나와 수풍금(아코디언)의 음색은 두 사람이 대립하게 된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엘레지의 애조가 어울리는 오카리나는 학천의 감상적인 성격과 잘 어울린다. 그는 군법회의에 회부된 로양 노인에 대해서도 고의가 아닌만큼 관대한 처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수풍금으로 <대행진곡(그레이트 솔저스 마치)>을 연주하는 시광은 저돌적이며 냉철한 분석력을 가진 장교로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로양 노인도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대립은 "변증유물적 세계관만을 제외하면 기타의 것은 모조리 정반대의 대립" 상태였다. 게다가 무장조직의 중간간부였던 탓에 둘의 갈등이 부대원들간 반목과 대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하나의 적과 싸우기 위해 외국 군대와도 동맹을 맺는 상황에서 자국 부대원들간의 대립은 오합지졸을 넘어 비굴한 항복보다 더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오카리나와 수풍금은 결코 한 합주단의 악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시광은 학천의 오카리나를 귀신 우는 소리, 계집아이 취미, 소극적, 감상적, 이런 말로 배격했다. 
학천은 시광의 수풍금을 질그릇 깨지는 소리, 마차가 자갈밭을 가는 소리, 미친놈 취미, 저돌적, 이런 문구로 비난했다. -<균열> 중에서-

그러나 사람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엄숙해지고 진지해진다고 했던가!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굳건한 강철대오를 형성하고 있었다. 저자의 고민은 단순히 사회주의 진영내의 고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균열 즉 분열이 극복되는 곳은 다름아닌 균열이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균열 속에서 균열을 극복하다

중포탄이 땅 속 깊이 파고 들어가서 터지면 균열이 생긴다. 이 때 생긴 균열은 임시 참호 대신으로도 쓸 수 있고 교통호 대신으로도 쓸 수 있다. 균열이라는 추상명사는 균열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극적으로 해소된다. 학천부대와 시광부대가 이 좁디좁은 균열에 갖히게 되었기 때무이다. 살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분열을 극복하고 공공의 적과 싸울 수 있는 단일대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이 균열을 극복하는 과정은 단순한 전쟁의 승리에 가까워지는 공식만은 아니었다. 조국 해방에 대한 믿음과 신념과 희망이 움트는 발아지점이었다. 비로소 오카리나의 단조와 수풍금의 장조가 멋진 하모니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은 다리가 하나 없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팔이 하나 없었다.
"여, 이럴 땐 수풍금이 있었으면 좋겠는걸."
이렇게 말을 건넨 것은 다리가 없어진 학천이었다.
"음 그렇지, 오카리나가 더 좋지."
이렇게 대답한 것은 팔이 떨어진 시광이었다. -<균열> 중에서-

소설 <균열>은 뻔한 전개에 뻔한 결말이 다소 진부하기도 하고 어릴 적 강제로 봐야했던 반공영화의 다른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해방을 위해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던 저자의 치열한 삶을 상상해 보면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도 아니다. 게다가 저자 김학철과 같은 이념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애써 잊으려 했다는 사실이 문학적 성과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게 한다. 

조국해방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는 역사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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