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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8 창랑정에서 바라본 한강은... (36)

유진오<창랑정기>/「동아일보」(1938.4.19~5.4)

 

유진오의 <창랑정기(滄浪亭記)>는 그가 동반작가에서 친일로 변절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묘한 여운을 남겨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창랑정'에 얽힌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창랑정'은 흥선대원군 시절 누구보다 맹렬하게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자고 주장하던 서강대신(나의 삼종 증조부)이 그 뜻이 좌절되자 벼슬을 포기하고 말년을 보낸 정자 이름이다. 저자는 이 창랑정에 얽힌 두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향수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하나는 서강대신의 쓸쓸한 죽음과 뒤이은 몰락한 가족사다. 몰락한 가족사는 서강대신의 신념과도 연결된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지지했던 서강대신에게 근대적 신식교육은 신념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고 종손인 종근을 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두고 아버지(구한말 관비유학생으로 현재는 중추원 탁지부에서 근무함)와 상의하던 기억이 포착된다. 결국 서강대신이 죽은 후 창랑정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몰락하고 만다.
또 하나는 을순이(종근형의 새색시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몸종)와의 추억이다. 사랑을 알 나이는 아니었지만 누구나 있음직한 얼굴 붉혀지는 아련한 기억이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일곱 살의 소년이 을순이와 저녁 햇빛을 받고 노는 꿈을 꾼다.

저자의 말처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청운의 큰 뜻'을 이룬 사람에게나 못 이룬 사람에게나 최후의 도착점이다. 향수는 누구에게나 두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단절하고픈 과거와 되뇌이고 싶은 추억. 그렇다면 저자가 굳이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면서 끄집어낸 창랑정에 대한 향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변절의 기로에 선 작가 유진오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리워할 고향이 없으면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말고 항상 앞날만을 바라보고 나가면 그만 아니냐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꺾으면 부러질 듯이 일상 꼿꼿하게 뻗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긴장 뒤에는 반드시 해이가 오는 것이요, 해이는 새로운 큰 긴장의 전주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창랑정기> 중에서-

저자는 소설 말미에 최신식 여객기가 처참한 폭음을 내며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여의도 비행장을 활주중이라는 묘사로 창랑정의 옛모습을 대비시키면서 나른한 추억 대신 굳센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이 소설을 발표하고 얼마 뒤 작가 유진오는 본격적인 친일작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어쩌면 저자가 창랑정을 떠올린 향수는 을순이와의 애틋한 기억보다는 서강대신의 몰락이었을지도 모른다. 향수는 단절하고픈 과거였고 향후 있을 자신의 변화를 정당화시키려는 의도적인 설정이었을 수도 있다. 즉 자신 앞에 놓여진 큰 긴장의 전주곡으로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창랑정을 떠올렸을지도...


변절한 작가의 속내를 들여다 보자니 밀려오는 불편함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창랑정기>의 또 다른 묘사에 시선을 멈추었다. 바로 1930년대 한강의 모습이다. 콘트리트 제방으로 둘러싸인 한강의 기억을 지우고자 열심히 검색해 보니 과연 돌아가야 할 한강의 옛 사진들이 몇 장 발견된다. 어째 변절한 작가의 속내를 들여다본 불편함이 다시 밀려오는 게 세상을 삐뚤게만 보려는 내 성정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창랑정의 위치를 추적해 보건대 서강대신과 서강대교의 연결성, 당인정 부근이라는 소설 속 설명으로 지금의 마포 어디쯤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창랑정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이 다분히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개발이 만들어낸 슬픈 추억이지 싶다.

바로 눈 아래 보이는 검푸른 물결 물결 건너로 눈에 가득하게 들어오는 넓고 넓은 백사장, 그 백사장 저편 끝으로 멀미멀리 하늘 끝단 데까지 바닷물결치듯 울멍줄멍한 아득한 산과 산, 나는 그 장대한 풍경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곳에 섰었다. -<창랑정기> 중에서-

또 당시 여의도에는 비행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 속 한강과 한강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진이 중첩되면서 삶의 편의를 위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운하로 유명한 독일 어느 지역에서 수십년에 걸쳐 강에 설치했던 제방을 걷어내고 백사장이 있었던 원래의 강으로 복원했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기사를 보면서 누군가 말하는 녹색성장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자연은 수천년에 걸쳐 인간의 철없는 행동을 보듬고 쓰다듬어 주느라 해지고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자연에게 자연의 옷을 입혀야 함에도 애써 인간의 옷을 입히려 한다. 그리고는 무슨 큰 선심이나 쓴 것처럼 의기양양해 한다. 우리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여간 어색하고 불편하다. 자연도 그러하지 않을까?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에 기대어 사는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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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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