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각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있다. 가령 마산의 아구찜, 포항의 과메기처럼 말이다. 나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 속에 나오는 '고향이 남쪽'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한다면 충청도도, 경상도도, 전라도도 다 남쪽이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걸죽한 사투리를 들으면 이내 '남쪽'은 전라도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일부 누리꾼들이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해 문제가 되고 있는 홍어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모든 애경사에서 손님맞이 상차림의 단골메뉴가 홍어다. 오죽 했으면 '홍어 빠진 잔치는 잔치도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을까. 심지어 그 집안의 애경사에서 홍어가 빠지면 손님 대접 잘하고 뒤로는 욕을 먹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만큼 전라도 사람들에게 홍어는 특별한 음식이다. 특히 삭힌 홍어는 이런 홍어 요리의 백미라고 하겠다. 삭힌 홍어의 본고장은 영산포다. 영산포에서 삭힌 홍어가 유명해진 데는 익히 아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흑산도에서 뱃길로 10분 거리에 영산도라는 섬이 있다. 영산도 사람들이 홍어를 처음 잡기 시작했으나 행정구역상 흑산면에 속하니 그냥 '흑산 홍어'로 부른다는 것이다. 과거 영산도 사람들은 왜구의 침략을 피해 나주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영산포다. 영산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포구라는 의미로 영산포가 되었다고 한다. 영산도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홍어를 잡으면 열흘씩 걸리는 뱃길을 따라 이곳 영산포로 가져와 팔았는데 제대로 보관이 되지 않아 부패했음에도 그 맛이 독특해 영산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사진>네이버 

 

나도 어릴 적부터 들었던 삭힌 홍어의 유래다. 그러나 오늘 아침 아주 특별한 글을 하나 접했다. 오늘자 경향신문 칼럼(홍어와 근대주의)에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던 삭힌 홍어의 유래가 통치·통제의 수단으로 왜곡되어 잘못 알려져 왔다는 주장이 실려있다. 마치 일제가 우리의 김치와 온돌을 폄하하기 위해 들이댔던 논리처럼 말이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남도에 살았던 어린 시절로 기억의 필름을 돌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홍어를 먹었던 때는 한여름이 아니라 봄햇살이 따가워지기 전의 겨울이나 초봄이었다. 영산도에서 영산포까지 열흘이 걸린다지만 추운 날씨에 쉽게 부패하기도 어렵거니와 바닷물에 보관해 이동하는데 그렇게 쉽게 부패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홍어는 동지 이후에 잡히고 입춘 전후에 가장 제 맛을 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칼럼의 필자는 '근대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설명 방식에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들을 가난이나 몽매함의 탓으로 돌려 농어촌을 도시의 식민지로 삼으려는 음모가 종종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즉 삭힌 홍어는 무지에서 비롯된 우연의 음식이 아니라 이미 발효의 개념을 알고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태어난 음식이라는 것이다.

 

아래 대화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는 오리알(鴨卵) 말이야. ‘피딴(皮蛋)’이라고 쓰지.”

-중략-

“날것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나도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김소운의 수필 '피딴문답'이다.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삭힌 홍어도 '피딴'과 같은 발효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지혜가 아닌 무지몽매에서 비롯된 우연의 결과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 또 다른 음모의 시작이 되고있지는 않은가 해서다.

 

익히 알려진 삭힌 홍어의 유래와 일부에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말로 홍어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 어딘가 닮은 구석이 보여 씁쓸한 아침이다.

 

 


 

 

홍어와 근대주의

출처: 경향신문 2013년 11월9일/사유와 설찰/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어느 망나니 누리꾼이 홍어를 들먹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욕한 사진과 글을 일베에 올려 유족에게 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인에 대한 모욕도 모욕이거니와 홍어가 겪은 수난도 가슴 아프다.

홍어는 홍어목 홍어과에 속하는 납작한 마름모꼴의 물고기로 제대로 성장할 경우 길이가 1.5미터를 넘는다. 제주도에서 흑산도를 거쳐 서해안 일대에 이르는 연안에서 고루 잡히는 바닷고기다. 그러나 옛날부터 홍어를 즐겨 먹었던 전라도 남쪽 해안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동지에서 설날 전후에 이르는 한겨울에 흑산도 근해에 알을 낳으러 왔다가 잡히는 홍어를 특정해서 ‘홍어’라고 부른다. 그것이 ‘진짜 홍어’다. 물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그 물고기가 잡히는 바다의 플랑크톤인데, 한겨울의 흑산도 바다에는 발광 플랑크톤이 많다고 한다. 그 발광 플랑크톤이 홍어 피부의 ‘곱’에 달라붙어 우리가 알기 어려운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냉동시설이 없었던 옛날에 홍어회는 겨울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추수가 완전히 끝난 겨울에, 혼례를 치르는 집에서는 잔치 음식의 기본으로 돼지 한 마리와 홍어 한 닢을 준비한다. 거기에 김장김치를 곁들이면 자연스럽게 삼합이 된다. 잔칫상에 반드시 홍어가 놓여야 하는 것은 막걸리 안주로 홍어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삭힌 홍어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어금니와 볼 사이에 그것을 밀어 넣고 제대로 빚은 막걸리를 마시면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난다. 그래서 ‘홍탁’이라는 말이 생겼다. 막걸리 없는 홍어회는 완전한 홍어회가 아니다.

어느 입심 좋은 사람의 책에서 삭힌 홍어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을 읽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흑산 앞바다에서 홍어를 잡아 열흘 넘게 배에 실어 목포나 영산포로 운송하는 동안 신선도를 잃고 부패한 홍어에, 암모니아성의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나 같은 홍어의 본고장 사람이 듣기에는 가당치도 않은 설명이다. 냉동시설이 없는 옛날에도 어부들은 끊임없이 바닷물을 길어 생선에 붓는 방식 등으로 상당한 기간 그 선도를 유지할 줄 알았다. 그래서 연평도에서 잡은 조기나 신안에서 잡은 민어가 신선한 상태로 서울 사람의 밥상에 오를 수 있었다. 더구나 홍어는 겨울에 잡는 물고기여서 열흘이나 보름 안에 부패할 수는 없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1950년대 말만 해도 연안 어선은 거의 모두 옛날과 다름없는 돛단배들이었지만 어시장에 부려진 홍어는 싱싱했다. 삭히느냐 마느냐는 먹는 사람의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어른들이 홍어 한 닢을 사오면 대개 연골이 붙은 부분은 삭혀 술안주로 썼지만, 양 날개의 신선한 살은 양념간장을 발라 구워 반찬으로 썼다.

 

운송 중 부패 운운하는 식의 설명에 내가 늘 흥분하는 것은 거기서 천박한 과학주의나 일종의 식민지주의 같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식민지주의라는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저 불행한 대에 일본인들이 우리의 김치나 온돌을 헐뜯을 때 들이대던 논리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섣부른 근대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설명 방식에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들을 가난이나 몽매함의 탓으로 돌려 농어촌을 도시의 식민지로 삼으려는 음모가 종종 숨어 있다. 그 음모 속에서 삶의 깊은 속내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자들의 천박한 시선 아래 단일한 평면이 되어 버린다. 나름대로 삶의 중심이었던 자리들이 도시의 변두리로 전락하는 것은 그 다음 수순이다. 식민주의의 권력자들은 삶을 통제하기 전에 먼저 삶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물론 이 일은 도시 안에서도 일어나고 한 사람의 도시민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모더니즘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할 때 염두에 두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주의는 한 시대의 과학으로 (또는 그 과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허접한 지식으로) 미래의 지혜만이 해명할 수 있는 것들을, 또는 미래의 지혜 그 자체를 억압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홍어회는 부패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발효의 효과를 이용하여 조리된 음식이다. 우리의 불투명한 내부는 우리 삶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이 다른 삶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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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3

  • 참교육 2013.11.09 08:11 신고

    서울문화가 표준무화요, 지방문화는 열등문화가 되는나라입니다.
    문화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은 뉴스꺼리가 되지만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 피닉스 홈스쿨맘 2013.11.09 09:06 신고

    오늘 티스토리 댓글운영이 참 이상하네요. 제 블로그 홈페이지가 여기저기서 차단되어서 댓글을 못 쓴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그냥 로그아웃 상태로 댓글 답니다.

    유럽 아이슬랜드에서도 상어를 흑산도 홍어처럼 삭혀서 먹는다고 하더군요. 섬인데도 마땅히 먹을 생선이 없고 상어는 있는데 독성이 있다던가 아무튼 그렇대요. 그래서 여기서도 삭혀서 먹는데 향취는 강하지만 그 톡쏘는 맛이 일품이라더군요. 아이슬랜드에서도 상당한 델리로 취급하구요. 하지만 독특한 향취도 유명하구요. 상어와 홍어가 서로 사촌이라 삭히면 비슷한 가 봐요.

    이렇게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맞게 음식이나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이런 것을 일부에서 지방색을 두며 비하용어로 쓰는 걸 보면 정말 답답해요. ㅠㅠ

  • 해피로즈 2013.11.09 09:17 신고

    홍어에 대해 그리 폄하하는 유래, 저도 별로 납득이 안갔어요.
    여강여호님 글 잘 읽었습니다.
    삭힌 홍어, 맛있습니다.

  • 더공 2013.11.09 12:38 신고

    아..그동안 알고 있었던 홍어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군요. 흠... 하긴 그 많은 생선중에 홍어만 그리 삭혀 먹는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게 맞는 말이네요. 발효의 전문가들~~^^ 잘 보고 갑니다.

  • 대빈창 2013.11.11 07:56 신고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삭힌 홍머맛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년전 남도 광주 결혼잔치에 갔다가 이내 중독되었지요. 바로 지금 계절이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흑산도 홍어를 택배로 주문하여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 카~~~ 탁주를 곁들이면. 그 즐거움 하나를 저는 잊어버렸죠. 술을 딱 끊었거든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 여강님이 이 역할을 하셔야겠네요.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널리널리 알리는 일이요.^^

  • BlogIcon zz 2013.11.18 14:35 신고

    킁킁.. 7시의냄새가난다

    • ㅇㅇ 2013.11.18 23:20 신고

      말로만 듣던 일베충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 쪽팔림? ㅋㅋㅋㅋㅋ

  • 홍어가 맛있는지 없는지는 안 먹어봐서 모르겠지만....홍어의 맛은 대중적이지는 않고 다소 지역적이란 생각이 드네요...그러니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한 없이 맛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음식일 것이고 맛없고 역겹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 되겠지요....먹어보고 맛있으면 계속 먹으면 되는거고 맛없으면 안먹으면 되는거고 편갈라서 좋네 싫네 하는거 자체가 웃긴 일임....

  • 홍어가 대중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서울부터 강원도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삭힌 홍어 즐기는 사람들 의외로 많죠.
    일단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이 있지만 또 처음 발들이기도 그만큼 쉽지 않은게 홍어죠.
    요즘엔 먹고 싶어도 비싼 가격때문에 쉽게 사먹기 힘들다는게 좀 안타까움이 있네요.

  • 12 2014.11.27 11:52 신고

    말로만 듣던 홍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쪽팔림? ㅋㅋㅋㅋㅋㅋㅋ

  • 홍어 2015.09.27 10:33 신고

    벌교 갔다가 삭힌 홍어 한점 먹고 토할뻔 했다. 변태냐? 그런거 먹게.. 갈치조림이나 조기구이가 천배는 더 맛있다. 아예 비교조차 안되지. 삭힌 홍어가 어떻게 유래했든 그런거 먹지마라. 오줌 쩐내하고 뭐가 다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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