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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8 안녕하지 못해 아슬아슬한 우리네 이야기 (5)

어쩜 이리도 희고 따스할까

눈처럼 세상을 응시하고

과거에서 흘러나온 꿈인 듯

커다랗게 부풀었구나

 

고구려나 신라 시대가 아니라서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지 않지만

알은 매끈매끈한 사람의 피부야

 

이 무서운 세상에 그 얇은 껍질은 위험해

모피알 정도는 돼야 안 다치지

알 속의 시간들이 흩어지지 않게

내가 살살 굴릴게

살림이 늘고, 아는 사람이 느는데,

내 안의 생은 동굴처럼 적막해

알이라도 굴리지 않으면 안돼

 

내가 볼 수 있는 동안만 알이겠지

내가 사는 동안만 굴릴 수 있겠어

온몸으로 쏟아지는 밤빛 속에서

깊은 밤 도시를 굴리며 나는 간다 

-신현림 시인의 '알을 굴리며 간다' 중에서- 출처> 창작과 비평 2013년 겨울호

 

*신현림: 1961년 경기도 의왕 출생.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 등이 있음.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는 어느날 압록강 웅심연에서 목욕을 하다 하늘의 아들 해모수를 만났다. 해모수는 유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유화의 아버지 하백은 해모수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결국 하백은 해모수를 하늘로 내쫓고 딸 유화는 남자를 잘못 만난 죄를 물어 귀양을 보냈다. 세상을 떠돌던 유화는 어느날 부여의 왕 금와왕을 만났는데 해모수처럼 금와왕도 유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부여와 데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화가 임신을 했는데 낳고 보니 알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알을 깨뜨리려 했지만 알은 깨지지 않고 오히려 동물들의 보호를 받았다. 결국 다시 가져왔고 드디어 알이 깨지고 그 속에서 아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 아이가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다.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살람이라는 뜻이란다. 뿐만 아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6촌 촌장들이 모여 왕이 없음을 개탄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백마가 내려오더니 절을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 자리에 알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신비하게 생각한 촌장들은 백마가 하늘로 올라간 다음 알을 깨뜨려 보았는데 이곳에서도 고구려처럼 아기가 나왔다고 한다. 신라의 시조만 알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훗날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알지도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도 하늘에서 내려온 여섯 개의 알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다섯 개의 알에서도 5 가야의 왕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난생신화가 많은 것일까. 영웅의 탄생과 알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옛 사람들은 둥근 알을 태양과 동일시 했던 것 같다. 태양은 곧 하늘이니 국가를 세운 시조의 존엄이 난생신화 또는 난생설화를 탄생시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유독 우리나라에는 고대 국가 건국신화 말고도 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동짓날 팥죽에 넣는 새알심일 것이다. 왜 하필 동지 팥죽에만 새알심을 넣어 먹었던 것일까. 동지는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즉 죽었던 해가 동짓날을 기점으로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알[卵]은 생명 탄생의 시작이다.

 

알에 관한 이야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헤르만 헷세의 소설 <데미안> 제 5장에 나온 구절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이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중에서-

 

아브락사스는 고대 그리스의 신이지만 여기서는 헷세가 재창조한 신념 체계다. 아마도 최고의 경지 정도라고나 할까. 어쨌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을 깨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끊임없는 자신과의 투쟁만이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점임을 은유한 것이다. 알은 자신만이 쌓아놓은 또 하나의 신화이면서 경계인 셈이다. 

 

또 한 편의 알에 관한 이야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현림 시인의 <알을 굴리며 간다>에서 알은 따스하지만 얇은 껍질을 갖고 있어 늘 위태위태하다. 관조하는 듯 하지만 알은 생명이요, 세상이요, 우리네 삶의 전부다. 알이 존재하는 동안만 삶도 의미가 있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알을 굴려야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위험하다. 알은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깊은 밤 도시'를 구르는 알에게 물어본다, 밤새 안녕하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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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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