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날지 못해 멸종했다는 도도새를 위한 변명

영어에 ‘dead as a dodo’라는 숙어가 있다. ‘dodo처럼 죽어버린이란 뜻일 텐데 ‘dodo’란 단어가 낯선 탓에 완벽한 의미를 유추하기가 쉽지 않다. ‘도도dodo’가 낯선 단어이기는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린다면 또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 1832~1898)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봤기 때문이다.

 

전세계 어린이들에게는 고전 중에 고전으로 통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원제는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는 영국의 수학자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186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낯선 단어 도도dodo’는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발견된다. 작가의 분신으로 원을 그리며 달리는 코커스(caucus) 경기를 가르쳐줬던 칠면조처럼 생긴 상상(?)의 새가 바로 도도새이다 

 

▲도도새. 사진>구글 검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도지슨이 대학생 시절 학장이었던 헨리 리델의 집에 묵으면서 리델의 자녀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즉 리델의 자녀들인 로리나, 앨리스, 에스디와 도지슨의 친구 로빈슨 덕워스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로지슨은 이들 모두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시켰다. 앨리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름을 재미있게 변형시켜 소설 속 동물이 되었다. 로리나는 앵무새(Lory), 에스디는 어린 독수리(Eaglet), 친구 덕워스는 오리(Duck)로 등장시켰고 도지슨 자신은 도도새(Dodo)로 묘사했다. ‘도도는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이다.

 

도지슨의 분신이었던 도도새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접근한 어느 새를 두고 서양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대가는 참혹했다.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상상에 맡겨야 할 만큼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되고 말았다. 그래서 영어 숙어 ‘dead as a dodo’완전히 죽어버린’, ‘완전히 없어진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이랬던 도도새가 2014년 대한민국에 나타났다. 그것도 날지 못해 멸종한 바보새가 돼서. 도도새는 서양인들이 붙인 이름처럼 그렇게 바보였을까? 그래서 완전히 사라졌을까? 이제부터 필자가 말이 없는 도도새를 대신해 그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려고 한다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사방에 먹이가 널려 있어서 날개짓을잊어버릴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외부의 갑작스런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새가 도도새라며 우리 공공기관이 우리 사회에 도도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해서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공직자를 도도새에 비유한 것이다. 얼핏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도도새의 직접적인 멸종 원인은 따로 있었다.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도도새를 두 번 죽이는 잔인한 말이다.

 

▲혁신하지 못한 공직자를 '도도새'에 비유한 박근혜 대통령 

 

도도새는 인도양의 모리셔스(Mauritius)섬에 서식했던 새다. 남아있는 도도새의 일부 뼈를 통해 상상한 모양은 칠면조를 닮았으며 몸무게는 약 23kg 정도로 깃털은 청회색이고 부리는 끝이 구부러져 칼집 모양을 하고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도도새의 멸종은 이 섬에 도도새를 위협할 어떤 천적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을 날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졌고 그래서 차츰 그 능력을 잃어서였다는 것이다. 모리셔스 섬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포루투갈인들이 바보라는 의미의 도도새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너무도 순진하게 사람들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슬픈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채.

 

도도새가 멸종한 것은 날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 때문이었다. 순진하게 사람들에게 접근한 바보새’, ‘도도새는 당시(1505) 섬에 들어온 포루투갈인들에게는 좋은 고깃감이자 사냥감이었다. 또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돼지, 원숭이, 쥐 등 포유류에게 도도새의 알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었다. 결국 도도새의 개체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모리셔스 섬에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은 지 200년도 안 된 1681년 이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인간은 이런 도도새가 진화하지 못해 멸종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인간의 탐욕을 덮으려 했으며 아직도 도도새의 법칙이란 말로 반성은 커녕 부관참시(?)의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도도새의 멸종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인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도도새의 소화기관을 통해서만 씨앗을 옮기고 성장시킬 수 있었는데 300년 전에 사라진 도도새와 함께 성장을 멈춰버린 것이다. 다행히 칠면조를 이용해 이 나무를 보존할 수 있었으니 이 나무가 바로 도도나무. 인간이 언제 다른 생물에게 도도나무의 도도새가 된 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탐욕으로 사라진 동물은 수도 없이 많다. 18세기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파란 영양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세운 유럽인들의 파란색 모피를 얻기 위한 과도한 욕심과 그들이 들여온 양과 소 때문에 먹이경쟁에서 밀려 굶어 멸종했다고 한다. 바바리 사자, 분홍머리 오리, 까치 오리 등도 똑 같은 운명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도도새는 결코 복지부동무사안일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탐욕과 잔인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증거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도도새의 법칙에서 인간의 탐욕과 잔인성을 봤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저자 도지슨이 자신의 분신으로 도도새를 선택한 것도 아이들의 순수함과 순진함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을 향한 작은 외침이었으리라!

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1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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