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처세술 달인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반응형

전광용의 <꺼삐딴 리>/1962년

올해 연예대상 후보를 한 명만 꼽으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인' 김병만을 말하겠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화려한 말의 유희인 개그가 대세인 예능에서 정통 코미디의 명맥을 지켜오고 있다는 장인정신은 물론 KBS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에서 보여준 도전정신은 감히 그를 한국 최고의 예능인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그래서 끝내 스스로 퇴장하고 마는 '달인'이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달인'에 도전하는 그의 노력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캐릭터 속 '달인'에게는 항상 반전의 아호가 따라 붙지만 코미디언 김병만은 말 그대로 진짜 '달인'이다. 

여기 또 한 명의 달인이 있다. 어설프게 꼬리를 내리고 마는 TV 속 달인이 아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꼭 자기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현실이 되곤 하는 그런 인물이다. 개그 콘서트 '달인' 코너의 사회자 말을 빌린다면 이쯤 될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16년 동안 단 한번도 양지를 떠나본 적이 없는 처세술의 달인, 아첨 이인국 선생을 모셨습니다."

그렇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이자 외과의사인 이인국 박사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분단과 6.25전쟁에 이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양지만을 걸어온 '처세술의 달인'이다. 해방 후 소련군이 주둔한 북쪽에서 민족 반역죄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이인국 박사는 소련군 소좌 스뗀꼬프의 왼쪽 뺨에 붙은 오리알만한 혹을 수술해 주고는 "꺼삐딴 리, 쓰빠씨보(고맙소)"라는 말과 함께 죽음 직전에서 풀려났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꺼삐딴 리'로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 잠깐, 톰소여와 허클베리핀의 작가 마크 트웨인(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 Mark Twain은 필명)이 그랬단다. 고전이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책이라고. 누구나 들어봤을 소설 속 주인공 꺼삐딴 리. 너무 익숙한 탓일까? '꺼삐딴'이 영어의 'Captain(캡틴)'에 해당하는 러시아말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즉 '우두머리', '최고'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인국 박사는 어떻게 최고, 꺼삐딴이 되었을까?

"국어 상용(國語常用)의 가(家)"

일제 강점기 시절 이인국 박사의 병원에는 "국어 상용(國語常用)의 가(家)"라는 액자가 붙어 있었다. 그 시절 공식적인 국어라고 하면 일본어였으니 '일본어만 사용하는 병원'이란 뜻이렸다. 물론 해방이 되고서는 글자 한 자도 남지 않게 꼼꼼히 찢어버리긴 했지만 이인국 박사의 처세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인국 박사에게 해방이 되고 소련군이 주둔한 북쪽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였겠는가! 바로 러시아어 사전이었다. 이인국 박사의 처세술에는 한치의 빈틈도 없다. 6.25전쟁 중에 남쪽으로 피난와서는 남한 사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직감한 그에게 영어는 또 하나의 모국어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했다. 이렇게 그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변환경에 맞는 색을 찾아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살아왔다. 이 정도면 그를 '처세술의 달인'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이런 그에게 민족이란 한낱 거추장스러운 장식에 불과했다. 그러기에 그의 고객은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일본인이었고 해방이 되고서는 권력층이나 재벌의 축에 드는 사람들뿐이었다.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도 그에게는 굴욕이 아닌 당연한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되었다. 현재 미국 유학중인 딸의 이름 나미도 철저한 처세술의 결과였다. 나미꼬였던 본래 이름을 해방 후에는 단순히 거슬린다는 이유로 나미로 불렀고 새 호적에는 '꼬'를 떼어버리고 올리는 한국이름 흉내에 불과했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혁명이 일겠으면 일고,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고,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하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꺼삐딴 리> 중에서-

이인국 박사의 앞날은 늘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르고 드높기만 했다. 그가 평생을 간직한 여전히 힘차게 초침을 움직이는 회중시계는 '꺼삐딴 리' 이인국 박사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처세술의 달인 '꺼삐딴 리'를 보는 우리네 마음은 못내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의 끈질긴 생명력을 지켜준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목도해야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

저자 전광용은 소설 속에서 이인국 박사에 대한 일체의 평가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흔치 않았던 풍자문학의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으로 평가받는 <꺼삐딴 리>는 한 인간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가는가를 별다른 감정변화 없이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저자도 우리도 구역질날만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인국 박사가 역사의 질곡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그 이면에는 그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뛰어넘는 왜곡된 역사의 불편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회중시계만큼이나 끈질긴 이인국 박사의 생명력은 다름아닌 실패한 과거청산 즉 잘못된 역사의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배양하고 키운 기생충이 아닐까 싶어서다. 특히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1962년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저자는 일제 강점기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모는데 앞장섰던-이인국 박사도 그랬다- 친일파들이 다시 사회 구석구석을 점령해 가는 것을 보면서 극심한 절망감에 빠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소설 <꺼삐딴 리>는 단순히 기회주의적인 어느 개인을 풍자했다기보다 그런 기회주의적 인간들의 뒤를 봐주고 있던 모순된 사회를 향한 촌철살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의 우리사회는 어떤가. 고비고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꺼삐딴'들이 분화에 분화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독재정권의 망령을 부활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뿐이던가. 이들은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도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일제 강점기가 한국 근대화의 시발점이었다는 일본 우익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심지어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정통성마저 부정하고 있다니 어안이 벙벙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꺼삐딴'들이 더이상 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과거청산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물려줄 유산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결코 가볍지 않은 짐이요 숙명이어야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