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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우리는 제3인간형을 강요받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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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길의 <3인간형>/1953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카오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땅과 하늘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섞여있던 혼돈의 시대는 천지가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영락없는 닮은꼴이다. 녹색성장을 얘기하면서 땅을 파헤치고 공정사회를 외치지만 승자독식의 방정식은 점점 더 확고해져만 간다.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면서 그들의 굶지않을 권리를 두고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학자금을 갚기 위해 학생들이 강의실을 떠나니 상아탑이란 말은 교과서에서나 들릴 뿐이다. 산업역군이니 수출역군이니 하는 사탕발림 뒤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노동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통일을 얘기하면서 서로의 허물을 헐뜯는 걸로 날새는 줄 모른다. 왜곡된 과거를 청산하자니 청산 대상자의 후예들이 견고한 권력의 성을 구축하고 있다. 앞으로만 굴러갈 줄 알았던 역사의 수레바퀴가 후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고 있다.  

그래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곳이 또 사회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군상들과 그 만큼의 삶의 방식들이 존재하는 곳이 사람사는 세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개개인이 꾸려나가는 삶의 방식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힘에 의해서 단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과 소수 권력의 편향된 정책에 의해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현대인의 비애일 것이다. 작가 안수길은 이런 인간들을 '제3인간형'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사명을 포기치도 그것에 충실치도 못하고 말라가는 타입'이 '제3인간형'이다.

안수길의 소설 <제3인간형>은 시대적 배경의 크나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겨준다. 마치 시대의 돌연변이처럼 표현된 '제3인간형'이 실은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 속에서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제3인간형'은 가장 선택하지 말아야 될 답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제3인간형'의 비애라고 하겠다.

'제3인간형'이 있다면 제1, 제2 인간형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저자가 순서를 무시하고 혹은 파괴하면서 '제3인간형'만 언급한 것은 이런 삶이 가지는 소외감과 상실감의 극단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이런 인간형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대한 강한 저항일 수도 있다. 인간이 사회라는 군집을 형성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 전쟁이 '제3인간형'을 출현시켰기 때문이다.  

 

제1인간형

소설 <제3인간형>의 주인공 조운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독특한 철학적인 명제를 난삽한 문체로 표현하는 개성이 뚜렷한 작가였다. 세속적인 것에 초연해 오직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만 사는 그는 동료들 뿐만 아니라 문학 소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그를 가장 세속적인 인물로 변화시키고 만다. 현실과 타협하고 만 것이다. 당면한 생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스스로는 이를 '타락'이라고 표현한다. 현실과 타협한 조운의 이런 자책과 달리 현실 속에서 이런 인간형은 사회 지도층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이지 싶다. 문학을 버린 조운의 풍부하고 기름진 풍체는 타협과 변절의 강력한 유혹일 것이다.

일이 바쁘기도 하려니와 돈 버는 재미는 또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경지인지라,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에 미끄러져 들어갔네....일절 생각을 하지 않으니 몸이 나고, 마음을 즐겁게 가지니 이맛살이 펴지고, 잘 먹고 잘 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처음 얼마 동안은 이런 생활이 올바른 것일까? 일종의 자책도 있었으나...-<제3인간형> 중에서-

제2인간형

조운을 문학적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사모했던 문학 소녀 미이를 들 수 있다. 회사 중역의 외동딸로 늘 화려하고 명랑한 부박한 아가씨였고 현재 자신의 삶에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미이의 이런 성격은 한국전쟁 중에 집안이 몰락학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면서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미이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인식하고 조운의 경제적 도움을 거절하고 간호장교 시험을 치른다. 전쟁을 겪으면서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간인 된 조운에게 미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잊혀졌던 아니 잊으려 애를 썼던 철학적 명제를 또다시 남겨준다. 미이가 자각한 소명의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조운과 극명하게 대비됨으로써 적극적으로 현실과 싸우는 이상주의적 면모를 느끼게 한다. 

제3인간형

주인공 석이는 전쟁 전에는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작품을 써왔던 작가다.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현재는 교사로 재직중이다. 그는 늘 번민 속에 산다. 생활을 위하여 교사로 취직했지만 그는 교사로도 작가로도 충실하지 못한 제3인간형 인물이다. 즉 석이는 조운처럼 사변의 압력으로 그의 사명을 포기하지도 못했고 미이처럼 용감하게 시대적 요구에 응하지도 못한 어정쩡한 인물이다. 

석이 개인의 성격적인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쟁, 부조리한 현실이 만들어낸 돌연변이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강요되는 인간형의 전형인지도 모르겠다. 현실도 이상도 어느 것 하나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왜곡된 갖가지 사회 구조들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조운과 미이의 선택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참혹한 현실은 가장 불행한 형태의 '제3인간형'을 창조하고 만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3인간형'이지만 우리는 그런 삶을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나는 어떤 인간형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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