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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슬라브

슬라브의 기독교화를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던 전쟁과 풍요의 신, 스베토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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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슬라브인들에게 스베토비트(Svetovid 또는 Svetovit)는 경작지의 수호자이자 태양과 빛의 신이었다. 그는 또한 전쟁과 파괴, 패배의 신이기도 했다. 스베토비트는 특정 슬라브 지역에 따라 스비엔토비트(Svyentovit), 스반토비트(Svantovit), 스비에토비트(Swietowit), 스베비트(Svevid), 비트(Vid)와 같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스베토비트는 발트 슬라브의 주요 신이었으며 그의 숭배는 한 때 슬라브의 성지로 여겨졌던 루얀(또는 루겐) 섬에 위치한 아르코나 요새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스베토비트에 관한 대부분의 자료는 이 고대 슬라브 성역에서 나왔다.

 

전쟁과 풍요의 신 스베토비트. 출처>구글 검색

 

스베토비트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정보 중 하나는 12세기 초 호엔슈타우펜 왕가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Barbarossa, 1122년~1190년) 문서와 색슨 역사가 헬몰트(Helmold of Bosau, 1120년~1177년)가 쓴 <슬라브 연대기>에서 발견되었다. 덴마크 역사가 삭소 그라마니투스(Saxo Grammaticus, 1160년~1220년)가 쓴 <데인인의 사적>에도 약간의 정보가 있다. 이들 연대기에는 슬라브인들이 소위 범슬라브 판테온의 모든 신을 숭배할 자유가 있었지만 서슬라브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특정한 관습과 필요를 대표하는 신을 선택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슬라브 영토 사람들의 순례지가 될 신전을 세울 것이다. 스베토비트를 숭배하는 슬라브인들은 발트해의 석호인 스트렐라순을 건너 본토 남서부에 정착한 서슬라브 폴라비아족인 라니라는 부족이었다. 이 발트 슬라브족은 오늘날 독일 북동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스베토비트의 주요 신전은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의식이 거행되었던 아르코나 곶의 야로마르스부르그 숭배 유적지에 위치해 있다. 이 성지의 이름은 12세기 이 지역을 점령했던 덴마크 왕 발데마르 1세의 가신이 된 야로마르 1세(라니 출신) 왕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언덕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에서는 스베토비트에게 바쳐진 많은 제물이 발견되었다.

 

헬몰트의 <슬라브 연대기>에 따르면 스베토비트는 모든 슬라브 부족 중에서 최고신이었지만 그가 접촉한 유일한 부족은 서슬라브 부족이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헬몰트는 스베토비트가 당시 왕이나 백작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베토비트는 모든 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신으로 여겨졌다. 그는 전쟁의 신이자 다산(풍요)의 신이었다. 그는 네 개의 머리를 가진 전쟁의 신이었다. 네 개의 머리는 세상의 네 측면을 상징했다. 그는 검과 고삐 그리고 은혜로운 백마에 달린 안장으로 표현되었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뿔잔을 들고 있었다. 점을 칠 목적으로 그의 백마는 그의 신전에 보관되었으며 제사장들이 지키고 있었다.

 

야로마르스부르그 유적지의 스베토비트. 출처>구글 검색

신전에는 신탁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었다. 신탁이나 대제사장은 백마의 행동을 관찰하곤 했다. 그는 또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졌다. 부족의 보물도 신전에 두어 전사들이 보호했다. 즉 스베토비트의 선의는 전사, 농부, 상인, 여행자의 번영과 복지에 필수적이었다.

 

아르코나의 중심에는 두 개의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스베토비트 신전이 있었다. 신전은 다른 슬라브 신전과 마찬가지로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신전은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신전의 크기는 400㎡로 건물 내부에는 높이 8m의 나무 신상이 있었다. 스베토비트는 네 개의 목과 네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페룬, 스바로그, 라다 및 모코스와 같은 주요 슬라브 신들의 작은 판테온을 상징했다. 그는 오른손에 여러 종류의 금속으로 만든 뿔을 쥐고 있었다. 이 뿔에는 포도주나 꿀이 채워져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액체의 양에 따라 제사장은 대지의 미래를 예언했다. 왼손에는 활을 쥐고 있었다. 스베토비트가 소유한 것은 은으로 만든 거대한 검이기도 했다. 조각상의 몸체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윗부분은 영적인 세계를 가운데는 물질적인 세계를 아랫부분은 지옥을 상징했다. 아르코나에 있는 스베토비트 신전은 1168년 덴마크 왕 발데마르에 의해 파괴되었다. 신상은 헐려 조각조각 불태워졌다.

 

1년에 한 번 수확기 동안 사람들은 신전 앞에서 동물의 일부 주로 가축의 머리를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커다란 종교적 축제였다. 그런 다음 제사장은 다가오는 해의 풍요와 빈곤을 예측하고 스베토비트에게 대지의 행운과 번영을 기도했다. 의식 전날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숨을 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신전을 깨끗이 청소했다. 숨을 쉬기 위해 그는 문으로 달려가곤 했다. 축제의 날 제사장은 동상에서 뿔을 가져왔다. 액체의 양이 줄어들면 다음 해에는 흉년이 들고 그 양이 줄어들지 않으면 다음 해에는 풍년이 들 것이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보냈다. 스베토비트 신전은 또한 슬라브 사람들이 미래를 배우기 위해 왔던 유명한 신탁이었다.

 

파괴되는 스베토비트 동상. 출처>구글 검색

 

신전에는 스베토비트 소유의 백마가 보관되어 있었다. 신전을 지키는 제사장 이외에는 누구도 그것을 만질 수 없었다. 신은 백마를 타고 자신의 백성을 이끌고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백마는 다가오는 전투의 결과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장들은 세 줄의 창을 신전 앞에 놓고 말을 끌고 그 위로 건너가곤 했다. 이 때 말이 오른쪽 다리로 출발하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왼쪽 다리로 시작한다면 전쟁은 연기해야 했다. 신전에는 또 엄청난 보물이 있었다. 슬라브인들은 수확의 일부를 신전에 바쳐야 할 의미가 있었다. 슬라브인들은 말의 꼬리털이나 갈기 털을 뽑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하면 말의 신성한 힘이 파괴된다고 믿었다.

 

스베토비트 신전에 보관된 많은 보물은 다른 부족의 발길을 모았는데 그것은 순례이기도 했고 약탈의 목적이기도 했다. 신전을 지키기 위해 300명의 전사가 지키고 있었다. 스베토비트에 대한 슬라브인들의 믿음은 너무 강해서 신전이 온전히 보존되는 한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스베토비트 신의 언덕은 이 영토에서 일어난 기독교 개종 운동 기간 동안 마지막으로 무너진 언덕 중 하나였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아르코나는 덴마크 왕 발데마르 1세에 의해 무너지고 기독교화된 마지막 슬라브 성지였다고 한다. 그가 아르코나를 침략했을 때 그는 부족의 보물들을 약탈했고 전사들에게 스베토비트 동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헬몰트에 따르면 전사들은 조각상의 목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렸다고 한다. 그런 다음 칼로 그것을 파괴하고 불에 던졌다. 약탈당한 보물은 신전이 있던 지역에 기독교 교회를 짓는 데 사용되었다. 일부 역사적 해석에 따르면 스베토비트는 풍요의 신 라데가스트(Radegast)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하고 아예 가짜 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독교 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은 이교도 신들의 신전을 기독교 종교적 요소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베토비트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슬라브 신화의 일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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