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진보적 문학평론가인 임헌영의 <윤동주론>에 따르면 저항문학은 문학인의 기능이나 대사회적 자세에 따라 문학인 자신이 단체나 결사 등에 직접 가담한 경우와 일시적인 의무나 지원 세력으로 어떤 단체나 운동에 뛰어든 경우, 직접 운동권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정서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경우 등 세가지 형태를 보게 된다고 한다.
임헌영은 한국의 대표시인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를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저항문학으로 분류하고 이런 시는 누구를 선동하지는 않으나 감명을 주며, 울리지는 않으나 가슴을 찌르며, 취하지는 않으나 각성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윤동주, 그를 말할 때면 '저항시인', '민족시인'이라는 호칭을 빼놓지 않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임헌영의 말대로 그는 행동적 저항보다는 순수한 민족 정서로 저항한 '민족시인'임에 틀림없다.
윤동주의 민족의식은 그의 죽마지우이자 평생을 독재와의 투쟁과 통일운동에 헌신한 故문익환 목사를 통해 종종 소개된 바 있다. 故문익환 목사는 그의 또다른 죽마지우인 장준하의 죽음 앞에서 "동주야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답답해 하고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가 살아 생전에 불의를 참지 못하고 투철한 민족의식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윤동주 시인, 故문익환 목사, 故장준하 선생은 북간도 명동학교 동기동창이다.
한편 윤동주를 '민족시인'이라는 울타리에 지나치게 가둬둔 나머지 그가 서정성 짙은 순수문학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저항시의 면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또 그가 암흑의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 또는 생활인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번뇌와 고민 더 나아가 그가 들려주고자 했던 했던 그를 둘러싼 자연에 대한 노래들을 쉬 지나칠 수도 있다. 시인 윤동주를 바라볼 때 저항문학과 순수문학을 동시에 때로는 접목시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동주의 시 마디마디마다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은유들을 빼곡히 적어가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의 서정시로서의 '저항문학'을 세속화시키는 일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이는 교과서와 시험에 매몰되어 주어진 항목들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를 빠뜨린 것 같다. 윤동주에 대해서, 윤동주 시에 대해서 아무리 왈가왈부해봐야 그의 시 한 편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다면 이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전문학을 대할 때 교과서에서 보여지는 정보가 다는 아니라는 사실을 늘 머릿속에 담아두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황한 사설에도 불구하고 책소개는 짤막하게 끝내려 한다.
범우사의 [윤동주 시집]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윤동주의 시 제목을 빌어 1부 자화상 2부 별 헤는 밤 3부 오줌싸개 지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편집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만큼의 책읽기 경지에 오르지 못한 탓에 내 나름의 허접한 편집을 해 보면 이렇다.
1부 자화상은 억압의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야만 했던 지식인의 자아성찰과 우리글로써 저항하고자 했던 식민지 백성의 조용한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집], <새로운 길> 중에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시집], <십자가> 중에서-
윤동주의 동생 윤혜원에 따르면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는 <쉽게 씌어진 시>라고 한다. 그는 왜 시가 쉽게 씌여짐을 부끄러워 했을까?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시집],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2부 별 헤는 밤은 생활인으로서 시인이 바라보는 사물과 자연에 대한 태도가 절제된 언어로 잘 표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윤동주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물을 주제로 한 적지 않은 시들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음산한 계사에서 쏠려 나온
외래종 레구홍,
학원에서 새무리가 밀려 나오는
3월의 맑은 오후도 있다
닭들은 녹아드는 두엄을 파기에
아담한 두 다리가 분주하고
굶주렸든 주두리가 바즈런하다.
두 눈이 붉게 여므드록
-[윤동주 시집], <닭> 중에서-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윤동주 시집], <코스모스> 중에서-
3부 오줌싸개 지도는 윤동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책 꽤나 읽는다 자부하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윤동주를 소개한답시고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작자가 여지껏 지나가다 흘겨보지도 못하고 있었다니....현학적 허세로 가득한 나 자신을 본다.
3부에서는 마치 동시를 보는 듯 유머와 위트가 번뜩이는 윤동주를 보게 된다. 혹자는 여기서도 저항문학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지만 나는 보여지는 그대로 느끼고 싶다.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로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걸.
-[윤동주 시집}, <참새> 중에서-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보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보대를 겨누고
돌 첫개를 뿌렸습니다.
-딱-
두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사-
세 개째 뿌렸습니다.
-딱-
네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사-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윤동주 시집], <만돌이> 중에서-
윤동주는 살아 생전에 어디에도 그의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감옥에서 죽은 후에야 유작으로 발표되어 민족시인의 반열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사후에 비로소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다. 족국을 빼앗긴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윤동주, 그는 2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갔지만 그의 문학과 조국해방에 대한 열정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땅을 밟고 있는 모든 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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