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문자폭탄에 항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추천합니다

반응형

어릴 적 살던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몇 개 있었다. 나름 부유한 집은 개인 우물도 있긴 했다. 우물가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 긷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폴짝 뛰어 들여다 본 우물 안에는 온 우주가 다 들어 있었다. 하늘도 있고,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있었다. 나에게 소리라도 지르면 우물은 더 큰 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우물 속 나를 보고 웃어보기도 하고, 찡그려 보기도 했다.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내가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목이 말라 두레박을 던지면 우물 밖 나와 우물 속 나는 같은 줄을 잡고 서로 당기는 듯 했다. 혼자 있는 우물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동네 우물마다 무서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시인 윤동주는 거기서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는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 중에서-


 ▲우물. 사진>오마이뉴스


시인은 우물을 들여다보며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가여워하기도 하며, 그리워하기도 하며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얼핏 열등의식의 발로인 듯 보이지만 성찰은 그렇게 낮은 곳에서의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성찰의 결과로 시인은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시인의 또 다른 시 '십자가'의 한 대목처럼 청춘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은 아닐런지. 


그리스 신화에도 늘 우물, 샘물 속 자신을 들여다보던 미소년이 있었다. 강의 신 케피소스와 요정 레이이오페의 아들 나르키소스(Narkissos)였다. 나르키소스는 자기 자신의 모습만 보지 않는다면 오래 살 운명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부하며 에코를 산 속 메아리로 만들고 말았다. 나르키소스가 사랑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샘물에 비친 바로 자신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샘물 속 자신을 사랑하다 죽고 마는데 그가 죽은 자리에 핀 꽃이 나르키소스(수선화)였다고 한다. 나르키소스는 물 속의 그림자가 자신인줄도 모르고 사랑하다 죽었지만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우물 속 그림자가 자신임을 알고 끊임없는 성찰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오래도록 저항하는 청춘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도 고통스러웠던 자기성찰의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폭탄이라며 공개한 자유당 모 국회의원의 휴대폰. 사진>서울신문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청문회가 한창이다. 과거보다 엄격해진 기준에 연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제도 되지 않았던(?) 위장전입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했다. 아무리 인수위 기간이 없어 검증 시간이 짧았다고는 하지만 공약은 공약이다. 꼭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 수준이 높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 문제가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는 안이한 인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반응이다. 국회 청문위원들에게 그야말로 '문자폭탄'이 쏟아지고 있다니 말이다. 심지어 어떤 의원은 이런 상황을 두고 '인민독재'라는 표현까지 쓰기도 했다. 물론 이유없는 욕설이나 비방은 지양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폭탄에 항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자신들은 시민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선거철만 되면 마구잡이로 문자를 보낸다. 자신들이 보내는 수만 통의 문자는 '홍보'고 자신들이 받는 문자는 '폭탄'이라는 인식은 유권자인 시민을 무시하는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자신들을 비난하는 수천 통의 문자가 그렇게 괴롭다면 자신들의 잘못된 정치로 고통받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의 심정은 헤아려보았는지 묻고 싶다. 자기성찰의 시간, 한번쯤 우물 속 자신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