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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1 한국 보수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인가? (1)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 아티카 지방에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일삼는 도둑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도둑의 집에는 철제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나그네가 그 집 앞을 지나가면 불러들여 침대에 눕힌 다음 나그네의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몸을 잘라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몸을 늘려서 죽였다고 한다. 이 도둑이 바로 그 유명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란 말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는데 자기 생각에 맞추어 타인의 생각을 고치려 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이 말을 흔히 사용한다.

최근 참여연대에 대한 정부와 일부 보수단체의 마녀사냥식 공격을 보면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떠올리게 된다. 이들은 우리사회를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재단하려고 한다.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이들을 보면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면 '좌파'니 '빨갱이'니 '김정일의 하수인'이니 하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보수는 그들이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는 김정일을 가장 닮아가고 있는 집단인지도 모른다.

테세우스,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다

소설의 재미를 가장 반감시키는 요소가 뻔한 권선징악이다. 반면 권선징악은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사실 권선징악이 없다면 인간은 삶에 대한 의미도 의지도 없을 것이다. 이 고리타분한 권선징악으로 인해 인간은 좌절과 절망의 바다에 빠질지라도 판도라 상자 맨 밑에 있던 희망을 믿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악명높던 도둑 프로크루스테스도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그가 사람들에게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테세우스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웅, 테세우스는 어떻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영웅,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태어나다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차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던  아이게우스왕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술을 조심하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이 신탁이 테세우스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게우스왕은 신탁을 받고 돌아가던 중 트로이젠이라는 나라를 방문하게 되는데 여기서 술을 마시고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와 동침을 하게 된다. 아들의 탄생을 예견했던 것일까? 아이게우스왕은 트로이젠을 떠나기 전 자신이 묵었던 방 앞에 섬돌 밑에 칼 한 자루와 가죽신을 넣어두고 아들이 태어나거든 섬돌 밑에 숨겨둔 칼과 가죽신을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일종의 신표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섬돌은 보통 사람은 들어올릴 수 없는 엄청난 무게였던 모양이다.

아이게우스왕 예견대로 공주의 몸에서는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이 바로 테세우스(Theseus)다. 테세우스는 자라면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16살 되던 해 공주 아이트라가 시킨대로 섬돌을 들어올려 칼과 가죽신을 들고는 아이게우스왕을 찾아가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재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일까? 하필 테세우스가 트로이젠에서 아버지를 찾아 아테나이로 가는 도중에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난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고 아테나이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왕의 후처인 메데이아 왕비로부터 독살의 위험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섬돌 밑에 숨겨두었던 신표로 인해 부자지간의 눈물겨운 상봉이 이루어지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죽었다

신화가 주는 매력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악(惡)은 언젠가 선(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도 선한 영웅의 등장에 최후를 맞이했다. 결국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도 시쳇말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모여사는 집단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사는만큼 무수한 생각들이 얽히고 설켜있다. 얽히고 설킨 사회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관용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보수도 진보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이해하면서 좀 더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분열을 조장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더이상 침대보다 길다고 해서 잘라내고 짧다고 해서 억지로 늘리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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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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