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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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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타락한 동심 쑈리가 있었다 송병수의 /1957년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혀 아이답지 않은 어린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에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속담 퀴즈를 척척 알아맞춘다. 영어도 곧잘 한다. 아빠의 고단한 생활을 얘기하면서 눈물까지 흘린다. 그 아이들 틈 속에서 속담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황하게 정답을 설명하는 한 아이는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천진난만함이 되레 이상하게 비쳐진다. 부모의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눈높이와 대리만족이라도 느낄것처럼 쏟아내는 부모의 욕심은 순수하고 순진해야 할 아이들을 애어른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이다. 여기 또 한 명의 애어른이 있다. 극히 순화된 표현을 빌려서 애어른이지 실은 어른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흉내내..
트로이의 여인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천번째 수요집회 에우리피데스의 /BC 415년 초연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집회가 있는 날이다. 1992년 1월8일 수요일에 시작되어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겨우 63명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적 논쟁거리로 전락하고 만 친일파 청산은 해방이 되고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오히려 현정부 들어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심심찮게 들리고 있으니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만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일 것이다. 전진할 것만 같던 역사의 수레바퀴가 후진기어를..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인의 서로 다른 선택 최인욱의 /1948년 진영은 호주머니 속에서 휴지를 꺼내어 타다 마는 사진 위에 찢어서 놓는다.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사진이 말끔히 타 버렸다. 노르스름한 연기가 차차 가늘어진다.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 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무참히 죽어 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 참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내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참나무를 휘어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1957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박경리의 소설..
쉰넷 사내와 열세살 소년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동행 최태웅의 /1940년 쉰네 살 곽서방과 열세 살 장손이는 늘 붙어다닌다. 빈대떡과 시루떡 안주가 있는 대포집도 서슴없이 드나드는 사이다. 얼추 따져봐도 할아버지와 손자, 적어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쯤으로 생각하겠지만 곽서방과 장손이는 움집들이 아기자기 들어박힌 대동강 하구 남포 빈민굴에서 아래 윗집 사는 이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곽서방에게 장손이는 아들없는 손자와 마찬가지고 장손이에게 곽서방은 아버지없는 할아버지와도 같은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다. 최태웅의 소설는 쉰넷 곽서방과 열세 살 장손이의 아름다운 동행을 그리고 있다. 이들의 동행은 여행의 한 지점이 아니라 일생을 함께 할 꿈이자 희망이다. 세대와 혈연을 초월한 이들의 동행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희망이라는 이름 곽서방과 장손이는 1930~..
<첫눈> 눈오는 밤 왕포집 여자들에게 생긴 일 방영웅(1942~)의 /「월간문학」38호(1972.1) 한국 문학과 지성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면 흔히들 1966년 창간된 《창작과 비평》과 그로부터 4년 후 첫 선을 보인 《문학과 지성》을 꼽는다. 서로 다른 색깔, 즉 민족문학 계열의 《창작과 비평》과 순수문학을 대변하는 《문학과 지성》은 각각 '창비 계열'과 '문지 계열'의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해 내면서 한국 문학과 지성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창작과 비평》은 1953년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사상계》가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정부패와 친일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재정난에 허덕이다 1970년 폐간된 이후 맥이 끊길뻔 했던 한국 진보 지식인들의 담론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런 《창작과 비평》이 배출해 낸 대표적인..
'인생은 박치기다' 왜곡된 성공신화는 버려라 이봉우의 /씨네21/2009년 어릴 적 육지에서 뱃길로 2시간을 달려야 땅을 밟을 수 있는 깡촌에 살았던 탓에 내 또래들이 이해하기 힘든 추억들이 많다. 섬 전체 통틀어 TV가 있는 집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TV 옆에는 노란 밧데리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밧데리값였을까? 큰 스포츠 경기라도 볼라치면 10원을 내야만 했다(내가 돈을 내지 않았기에 가물가물!..10원은 아니고 1원짜리로 기억된다. 아무튼).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는 TV를 가진 집이 없어 산넘어 다른 동네로 가야만 했으니....당시에는 아버지 손잡고 가는 길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복싱과 프로레슬링, 그리고 고교야구였다. 무엇보다도 프로레슬링..
캡틴 박지성,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박지성의 /2010년 2002년 6월14일. 5천만 붉은 악마의 시선은 온통 한국 대 포르투갈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 인천 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비록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사상 첫승을 올리기는 했으나 16강 진출의 제물로 삼았던 미국과의 경기를 1대1로 비긴 탓에 붉은 악마의 열기는 한여름 태양보다도 더 이글거리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고 때로는 숨을 죽이며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옆사람 손을 힘껏 잡아야만 했다. 이기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를 따지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비겨야만 하는 경기. 그러나 포루트갈에는 세계적인 축구스타 피구가 버티고 있었다. 홈이라는 잇점 빼고는 어느 것 하나 포르투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리로서는 져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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