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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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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의 인심도 모르는 사람들 물 한 모금/황순원(1915~2000)/1943년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담했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를 빗대어 잔인하다는 표현을 쓰는 인간은 그야말로 오만함 그 자체였다.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하기 위해 만든 이성은 인간의 잔인함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고 말았다. 슬픔을 나눠도 모자랄 판에 울고 있는 이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조롱하는 인간들과 같은 공기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버러지 같은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현실에 더 참담했다. 물리적 폭력만이 잔인함의 전부가 아님을 목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 6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일베(이하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과 보수 대학생 단체 회원 100여 명이 이른바 '폭식 행사'를 열었다...
소년은 사랑했고 아팠다. 그리고 어른이 될 것이었다 소나기/황순원/1953년 어릴 적 살던 동네에 큰 방죽이 하나 있었다. 가을이면 여름내 논에 물을 대느라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맨살을 드러낸 방죽 바닥은 온통 미꾸라지 천지였다. 뻘같은 흙을 한 움쿰 걷어 올리면 미꾸라지 반 흙 반이었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붕어들도 얼마 남지않은 물 속에서 연신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이 때는 낚시대와 그물이 없어도 모두 능숙한 어부였다. 그렇게 놀다보면 어느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메아리처럼 들릴 듯 말 듯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방죽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여름에 있었다. 학교를 파하자마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방죽으로 뛰어들었다. 여자애들이 보든말든 상관없었다. 방죽 턱을 붙들고 지칠 때까지 물장구를 쳤고 발 끝이..
아동학대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 별/알퐁스 도데/1869년 갈비뼈가 16개나 부러질 정도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 8살 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죽은 아이의 언니에게 누명을 씌운 계모와 이런 계모의 학대를 방관한 친부. 요즘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울산·칠곡 계모 사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식이 굶주려 죽은 줄도 모르고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있는 젊은 아빠, 가출한 중학생 딸을 목검으로 목검으로 때려 숨지게 한 30대 아버지. 언론 보도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천일공노할 아동학대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동학대 가해자의 80% 정도가 친부모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식 보고된 아동학대는 6,796건으로 이중 친부가 41.1%, 친모가 35.1%였다고 한다...
황순원 곡예단 피에로들을 소개합니다 곡예사/황순원/1952년 왁자지껄 도때기 시장같던 분위기가 일순간 숙연해진다. '오늘도 아슬아슬 재주 넘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곰이네. 난장이 광대의 외줄타기는 아름답다, 슬프도다, 나비로구나'. 그리고는 억눌렸던 감정이라도 폭발시키 듯 숨가쁘게 전개되는 가사와 경쾌한 몸짓이 무대를 장악한다. 그 짧은 난장은 이내 다시 가슴을 후벼파 듯 느리게 느리게 감성을 자극한다. '커다란 무대 위에 막이 내리면 따스한 별빛이 나를 감사네. 자주빛 저 하늘은 무얼 말할까. 고요한 달 그림자 나를 부르네'. 끝맺음은 흥청망청 춤을 추다 숨쉴 틈도 주지않고 '헤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짧은 공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절되고 알 듯 모를 듯한 여운만 길게 남는다. 참 많이도 불렀다. 아니 그렇게라도 폭발하고 싶었다. I..
기대되는 <소나기> 작가 황순원의 미공개 초기작 발표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파짝 징검다리를 건너 뛰어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라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황순원의 소설 중에서- 소설 속 한 장면이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 경험해봤음직한 애틋한 추억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채 알기도 전에 이성을 향한 관심은 마치 법칙이라도 된 듯 무관심한 척 하거나 때로는 싫어하는 척 하는 행동으로 표현하곤 했다. 황순원의 소설 가 교..
누구나 가슴에 별을 품고 산다 황순원(1915~2000)의 /「인문평론」(1941.2) 그리스 비극에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자주 등장한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느날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우스를 죽이고 왕비였던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테베의 왕이 된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지만 또 다시 신탁을 통해 테베의 왕 라이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였고 테베의 왕비이자 부인이었던 이오카스테는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이 충격적인 사실 앞에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이오카스테는 자결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부모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동화적 상상으로 깨버린 반공 이데올로기 황순원(1915~2000)의 /「신천지」52호(1953.5)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접전 지역의 한 초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만무방'을 보면 주인공인 초가 주인여자는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두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의 참혹성과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과거군사정권 시절 납북됐다 귀환한 사람들이 남쪽에서는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사는 경우도 허다했고 북파공작원들은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국가로부터 버림받곤 했다. 한편 이들 납북자들과 북파공작원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정권과 단체를 향해 빨갱이라고 비난한다. 해방 후 찾아온 남북분단과 6.25전쟁은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한국사회 전반에 뒤틀린 질서를 태동시켰다. 이데올로기라는..
그는 왜 독가마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황순원의 /1950년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성인이라면 가장 친숙한 작가 중 한 명이 황순원이 아닐까 한다. , , , , , 등 교과서에 직접 실렸거나 비중있는 수업 부교재로 다뤄진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그의 한국 문학사적 위치를 떠나 유독 교과서에 그의 작품들이 많이 실린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우선 나 에서 보듯 10대의 감수성이 녹아든 그래서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는 교육의 특성상 순수문학을 추구했던 황순원의 작품세계가 교과서와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른다. 한편 그가 추구했던 순수문학이 반공이데올로기를 의식한 자기검열의 결과라는 어느 비평가의 설명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껴가지 못한 작가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