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길동전

(2)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나의 하루는 어둠이 내리고서야 시작된다. 벌써 2년째다. 토요일을 제외하곤 늘상 다른 사람들이 하루의 노곤함을 풀 시간에 나는 출근 준비를 한다. 어김없이 저녁 여덟 시가 되면 버스에 몸을 싣는다. 특히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둔산동 일대가 왁자지껄해지는 금요일 밤의 출근은 여간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먹고 사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것을. 어쨌든 가방에는 늘 두 권의 책을 넣는 게 출근준비의 전부다. 버스는 항상 맨 뒤에 자리를 잡는다. 직장이 40분 정도 되는 거리의 종점에 가까워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으면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좋다. 다행히 둔산동에서 신탄진간 버스노선은 이용객이 거의 없어 서서 가는 경우는 드물다. 40분 동안은 책과 벗할 수 있는..
심청은 공동체 살인의 희생양이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 사실은 공동체 살인의 희생양이었단다. 고전 속 심청은 분명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설 속 도화동 사람들은 눈먼 아비를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숭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훈육의 결과로 심청이 스스로 희생하였으니 '이념 공동체의 심청 살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념 공동체의 심청 살해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심청이 죽기 전 남긴 대사 어디에도 자신이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눈을 뜬다는 확신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희생이 결국은 아비를 죽게 하고 말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이것은 계약위반이다.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고 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