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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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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그가 고민하고 방황했던 이유 선우휘의 /1956년 빛바랜 개구리색 얼룩무늬 군복, 세상에 흩어진 백가지 색을 단 하나로 덧칠하려는 듯 의기양양한 검은 썬글라스, 전장에 선 지휘관의 그것마냥 허리춤에 단단히 꽂힌 권총……요즘 집회현장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아니 어느날 갑자기 아스팔트로 쏟아져 나온 과거의 망령들이다. 전투적 복장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지만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살벌한 구호는 차치하고라도 이들은 가스통에 불을 붙여 거리를 활보하고 공권력이라도 부여받은 듯 버스를 세우고 공포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때로는 섬뜩한 웃통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릴 적 반공집회에서나 봤음직한 '○○○ 화형식'은 예사다. 시민단체의 순순한 집회라기보다는 테러리스트들의 행군처럼 보이는 이 풍경을 연출한 사람들은 다름아..
백범, 일제의 심장을 정조준하다 백범 김구의 1896년 어전회의를 마친 고종은 급히 제물포로 전화를 걸었다. 일본군 대위 츠치다를 살해한 김창수란 자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서였다. 김창수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우연히 평상복을 입은 츠치다를 만났다. 김창수는 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 중 한명으로 생각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해 그의 칼을 빼앗아 그를 살해했다. 자신의 행동에 당당했던 김창수는 도피하지 않고 경찰에 체포되어 제물포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종의 전화로 사형을 면한 그는 3년 후 탈옥하여 심산유곡을 방랑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189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전화에 얽힌 유명한 일화다. 김창수, 그가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백범 김구다. 이 사건 이후 백범은 신분노출을 막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