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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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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쿨리(coolie)의 친구일까요? 백신애의 /1934년 19~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과 인디아 노동자들을 쿨리(苦力, coolie)라고 불렀다. 이들은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받는 아시아 출신 노예 정도로 여겨졌다. 쿨리의 어원이 힌두어 큘리(Quli, 노예)라고 하니 아직도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단다. 연관성은 확실치 않으나 아랍어에도 쿨리와 비슷한 발음의 쿠리(kuuri, 풀무질하는 사람)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절 아시아인들의 이민역사는 지독한 가난에서 비롯되었고 눈물과 차별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과 인디아의 이민사에 쿨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러시아 및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까레이스키, 남미로 건너간 애니깽으로 대표되는 슬픈 이민역사가 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을 이 ..
평화고무 노동조합과 삼성의 무노조 신화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공장신문』/「조선일보」(1931.7.5~15)/창비사 펴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어느 기업의 업무평가에는 전체 직원의 5%가 무조건 하위 고과를 받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하위 고과는 전부 출산휴가를 쓴 여사원들의 몫이 되었으며 회사는 출산하고 복귀한 여사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업무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계속 매기겠다고 겁을 준다고 한다. 결국 여사원들은 임신해도 회사에 말도 못하고 노동강도를 버티다 못해 유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단다. 60,70년대 대한민국의 얘기가 아니다. 21세기 그것도 일등 기업, 일류 기업, 글로벌 기업이라 자부하는 삼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을 폭로한 삼성 직원은 노동조합의 ..
아내는 왜 밥그릇 뚜껑을 열어보았을까?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익상의 『어촌』/「생장」3호(1925.3)/창비사 펴냄 꽃 한 송이 피워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 중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신석정의 중 일부다. 20세기 한국소설을 얘기하려다 밑도 끝도 없이 신석정의 시는 왜 인용했을까? 낯선 이름, 소설가 이익상을소개하자니 마땅히 내세울 친숙한 이력이 없어서다. 소설 『어촌』의 작가 이익상은 신석정의 사촌매부다. 또한 이익상은 신석정을 시인으로 이끈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익상이 카프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는 일본 유학 시절 접한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었다.주로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던 이익상은 그의 소설 『어촌』, 『번뇌의 밤』, 『젊은 교사』, 『위협의 채찍』, ..
낙동강을 울게 하는 자 또 누구인가! 조명희의 /1927년 졸고 있는 이 땅, 아니 움츠러들고 있는 이 땅, 그는 피칠함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마을 앞 낙동강 기슭에 여러 만 평 되는 갈밭이 하나 있었다. 이 갈밭이란 것도 낙동강이 흐르고 이 마을이 생긴 뒤로부터, 그 갈을 베어 자리를 치고 그 갈을 털어 삿갓을 만들고 그 갈을 팔아 옷을 구하고, 밥을 구하였다. -『낙동강』 중에서- 낙동강을 삶의 터전으로 의지하고 살던 촌민들은 노래 불렀다. 기러기 떴다. 낙동강 우에 가을바람 부누나 갈꽃이 나부낀다. -『낙동강』 중에서- 이런 낙동강의 갈밭이 어느 날 남의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촌민의 무지 때문이었다. 십 년 전에 국유지로 편입이 되었다가 일본사람 가등이란 자에게 국유 미간처리라는 명목으로 넘어가고 말았..
'민촌' 쥐는 쥐인 척 해야 제격이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기영의 『민촌』/「조선지광」50호(1925.12)/창비사 펴냄 "쥐는 쥐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제격에 들어맞는 법이다. 작자는 여실하게 부르조와 연애소설이나 쓰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비위에 맞는 강담소설이나 쓸 것이지 아예 이와 같은 무모한 경거망동의 만용은 부릴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념론자이기로 이만한 이해관계는 구별할 만한 두뇌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사람이 있다면 가슴을 쓸어내려도 될 듯 싶다. 그대가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는 말이다. 쥐이면서 쥐가 아닌 양 행세한다는 이는 다름아닌 춘원 이광수이기 때문이다. 조국해방을 황국신민이 못된 아쉬움으로 토로했던 뼛 속까지 친일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