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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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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사랑했고 아팠다. 그리고 어른이 될 것이었다 소나기/황순원/1953년 어릴 적 살던 동네에 큰 방죽이 하나 있었다. 가을이면 여름내 논에 물을 대느라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맨살을 드러낸 방죽 바닥은 온통 미꾸라지 천지였다. 뻘같은 흙을 한 움쿰 걷어 올리면 미꾸라지 반 흙 반이었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붕어들도 얼마 남지않은 물 속에서 연신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이 때는 낚시대와 그물이 없어도 모두 능숙한 어부였다. 그렇게 놀다보면 어느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메아리처럼 들릴 듯 말 듯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방죽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여름에 있었다. 학교를 파하자마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방죽으로 뛰어들었다. 여자애들이 보든말든 상관없었다. 방죽 턱을 붙들고 지칠 때까지 물장구를 쳤고 발 끝이..
태어나 처음 만난 아버지가 불편했던 이유 봉숭아 꽃물/김민숙/1987년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마치 노래에서처럼 담장에 바짝 기대어 봉숭아꽃이 붉게 물들었다. 붉게 물든 것은 봉숭아꽃만이 아니었다.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손톱도,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꿀맛같은 단잠을 자고 있는 여동생의 손톱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동생의 손톱이 부러웠는지, 봉숭아 꽃물이 잘 물들도록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자고있는 동생을 시샘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어머니를 졸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하나에만 봉숭아 꽃잎 이긴 것을 올려놓고 이파리로 감싼 뒤 실로 칭칭 동여맸다. 동생처럼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손에는 번지지 않고 손톱에만 예쁘게 물들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것도 글자를 모를 때의 일이었지, 국..
첫사랑의 설레임과 통과의례로서의 성장통 배수아의 /1999년 18세기 후반 독일에서 일어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감정의 해방이나 개성의 존중을 주장한 문학운동을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이라고 한다. 이 말이 조금 어렵다면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우리말 번역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질풍노도(疾風怒濤)'는 당시 독일사회의 맹목적인 출세의식과 소위 사회지도층의 경직된 사고, 구시대의 신분제도로 인한 자유와 독립 의지의 부재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 독일)를 꼽는다. 괴테는 그의 소설 을 통해 '질풍노도'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 선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청소년기를 이르는 '질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