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성인

(2)
한국사람이 '어뢴지' 하면 미국사람 되나요 말의 사기사님네께/신동엽(1930년~1969년) 한 천년 졸아나보시지요 일제히 고개들을 끄덕대며 무슨 싸롱이라든가에 들어앉아 별들이 왜 별입니까 그것은 땅덩이지요. 아 그 유명한 설계사 피카소씨라시죠 아니, 저, 뭣이냐 그 입체파 가수들이라시던가요. 멋쟁이시던데요 새파란 제자들을 대장처럼 데리구 앉아. 농사나 지시면 한 백석직은. 품도 한창 아쉴 땐데. 염체 좋은 사람들 그래, 멀쩡한 정신들 가지구서 병신 노릇 하기가 그렇게나 장한가요 마음껏 흉물 쓰구 뒤나 자주 드나드시죠 양식은, 피땀 흘려 철마다 꼭 꼭 보내올릴께요. 뽕먹는 누에처럼 그 괴상한 소리나 부지런히 뽑아서 몸에 자꾸 감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참 훌륭도 하시던데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같을까 미국사람을 참 훌륭히도 닮으셨어 조끔만 더 있으면..
지식인이라고 다 지성인이 아니다 유진오의 /「신동아」39호(1935.1) 가 발표된 1935년 식민지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일제의 사상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카프 맹원에 대한 검거 열풍이 있었고 문화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조선의 전통적 가치관은 황국신민의 지위를 강요받고 있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많은 지식인들 특히 문학인들은 조선 청년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데 그들의 지식을 아낌없이 동원하곤 했다. 자발적이었건, 강요되었건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에는 지식인만 넘쳐날 뿐 지성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시국이 되고 말았다. 의 저자 유진오가 문학인보다 정치인으로 더 기억되는 데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문학에 심정적 지지를 보냈던 동반작가로도 활동했던 유진오는 1939년 잡지「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