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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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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자본의 상업적 가치로 평가될 수 없다 구효서의 /1993년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릴 때면 추억하는 단어가 있다. '문학소녀', '문학소년'. 모든 첫사랑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되는 그런 나이가 있었다. 감정의 변화가 질풍노도처럼 휘몰아치던 시절 방황의 한 켠을 매우고 있는 것은 늘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문학을 진짜 마음을 담아 접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시인의 마을. 당시 작가란 직업은 물욕의 정점, 종교와도 같은 순수한 영혼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첫사랑이 떠나가고 그 거리만큼 문학이 소원해질 때도 상상 속 작가의 이미지는 그때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작가의 삶은 우리네 상상 속 그것일까? 구효서의 소설 의..
내 청춘의 갈증을 채워줬던 장편소설 5선 요즘 대학생들에게도 낭만이라는 게 있을까 궁금하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부모 등골 휘게 만드는 등록금,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 오히려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가 더 쉬워 보이는 취업전쟁. 청춘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던 낭만이 사치로 전락해 버린 현실에 낭만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괜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자기 계발서가 범람하는 현실도 아픈 청춘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내 대학시절은 그나마 낭만의 흔적들이 남아있었지 싶다. 당시 낭만이란 단순히 젊은 날의 만끽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현실과 미래의 고민을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채워갔던 것도 낭만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장장 12년을 새장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청춘에게 새장 바깥에 존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