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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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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네와 필로멜라, 엽기의 끝판왕 봄을 알리는 철새 중에 제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3월3일(삼짇날)에 와서 음력 9월9일(중양절)에 강남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즉 수가 겹치는 날에 와서 수가 겹치는 날에 간다고 해서 예로부터 영민한 길조로 여겨왔다. 고전 소설 에도 등장하면서 우리에게는 어떤 조류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새이다. 실제 제비가 겨울을 나는 곳은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중국 양쯔강 이남을 의미하는 '강남'을 제비의 겨울 서식지로 인식해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비가 있다면 유럽인들에게는 나이팅게일이 있다. 제비만큼이나 유럽의 문학작품이나 신화에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특히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새로 유명한데 모든 생명이 잠든 시간인 밤에도 잘 울기 때문에 나..
아버지는 왜 불효청구소송까지 불사했을까 돌다리/이태준(1904~?)/1943년 대들보 위의 제비 한 쌍/암수가 사이 좋게 들락날락//진흙 물어다 서까래 틈에 동아리 트니/한 둥지에 새끼가 넷이어라//새끼 네 마리 밤낮없이 무럭무럭 자라니/먹이 달라 우는 소리 시끄럽기도 하는구나//푸른 벌레 잡기 쉽지 않아/어린 새끼 배부를 겨를이 없네//어미 제비 부리 발톱 해질망정/마음만은 지출 줄을 몰라라//순식간에 천 번을 오가건만/둥지 속 새끼들 배 곯을까 걱정이네//모진 고생 다하고 달포를 지내니/어미는 야위어 가고 새끼는 살이 찌는구나//지지배배 말 가르치고/한올 한올 깃털 다듬어 고이 단장해 주니//마침내 깃과 날개 다 자라/뜨락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날개를 쫙 펼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바람 따라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리네//어미..
놀부를 위한 변명, 흥부는 게으른 가난뱅이었다? 놀부뎐/최인훈(1936~)/1995년 수절 과부 욕 보이기, 여승 보면 겁탈하기, 길가에 허방 놓기, 제비 다리 부러뜨리기, 열녀 보고 험담하기, 이장하는 데 뼈 감추기, 배앓이 하는 놈 살구 주기, 오 대 독자 불알 까기, 만경창파에 배 밑 뚫기, 제주 병에 오줌 싸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갓난 아기 똥 먹이기, 남의 노적에 불지르기, 초상 난 데 춤추기, 불 붙는 데 부채질하기, 똥 싸는 놈 주저앉히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기 밴 계집 배 치기, 곱사 엎어놓고 발꿈치로 치기……. 우리가 아는 놀부의 만행은 요즘으로 치면 거의 범죄 수준이었다. 조선 시대 살았기 망정이지 21세기 대한민국 시민이었다면 전과 수십 범은 됐을 놀부가 그 동안 우리가 읽었던 의 내용이 잘못 알려졌..
한글날에 읽는 우리말 동시, 한글이 이 정도다 달 타는 날/강순예/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 마침표』10월호 저녁 출근길, 음산한 분위기에 아무 생각없이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여인네 눈썹만큼의 형체만 남긴 채 시나브로 검은 그림자 뒤로 숨고 있었다. '참, 오늘 3년 만에 개기월식을 볼 수 있다고 했지!.' 문득 며칠 전 본 뉴스가 스쳐갔다. 그러고 보니 사십 년 넘게 살면서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해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린다는 월식 현상을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린아이마냥 신기한 듯 밤하늘을 쳐다보며 걷는데 둥그렇게 빛으로 형체만 유지한 달은 나보다 더 서둘러 자꾸만 도망치듯 저만치 앞서 있었다. 어릴 적 읽었던 동시에도 이런 표현이 있었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개를 끄덕이다니 척박하디 척박한 내 감성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