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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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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인가, 문화적 충격인가 하근찬(1931년~2007년)의 /1963년 1980년대 국내에 불어닥친 홍콩 느와르의 충격은 대단했다. 영화 , , , 등에서 보여준 홍콩 문화는 당시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다. 주춤했던 홍콩 느와르의 부활이라고 불렸던 2002년작 영화 까지 홍콩 느와르의 주류는 아마도 남성 중심의 우애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홍콩 느와르의 충격이 남성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빼어난 외모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부른 노래는 여심을 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1980년대 국내를 강타한 문화적 충격은 2000년대 역으로 한류의 홍콩 강타로 반전이 이루어졌다. 홍콩 젊은이들의 휴대전화 벨소리로 드라마 속 주제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문화 흐름의 대반전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
삼각의 집, 꿩과 함께 날아가버린 꿈 하근찬(1931년~2007년)의 /1966년 1966년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대는 어느 날 오후, 미아리 산비탈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집은 부숴져 내리고 허옇게 사람들이 들끓으며 여기저기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무너져 내린 집은 벌써 납작해져 버려 예전의 형체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 참혹한 광경에 누구든 횡경막이 수축되어 공기는 성대를 뚫지 못할 것이다. 멀리서 처량하게 트럼펫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빠—ㅇ 빠빵 빠—ㅇ 빠빵 빠응빠응 빵빠빠—ㅇ. 빠—ㅇ 빠빠응 빠응빠응빠응 빠—ㅇ 빠빵빵. …… 2009년 1월20일 북극바람이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든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는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생존권을 외치는 이들이 겨울바람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들을 생존권의 마지막 보루..
분단이 잉태한 또 하나의 수난 이대 이원규의 /1987년 이원규의 소설 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하근찬의 소설 (1957년)를 떠올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 말기 징용에 나가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 만도, 만도의 아들 진수는 한국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게 된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도가 아들 진수를 업고 건너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부자의 현실에 가슴 찡한 감동이 몰려온다. 가 수난의 원인이 전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다른 시대에 의한 피해자들인데 반해 은 고착화된 분단이 만들어낸 비극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비극이 대물림된다는 점에서 와는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을 보게 된다. 2011년 12월25일 광주고법에서는 의미있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납북 어부 간첩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
만나야하는 사람들의 조각난 퍼즐 맞추기 이균영의 /1983년 술먹고 난 다음날 찾아온 두통과 갈증은 순간 술과의 종언을 고할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헛개나무의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나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도 광고효과로 인한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 숙취의 고통을 완전히 털어낼 수는 없다. 인간은 간사하다. 그놈의 망각 때문이다. 망각은 고통의 기억을 순간의 희열에 무릎꿇게 한다. 알코올이 사라진 간(肝)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다시 술을 흡수할 공간을 만들어낸다. 언젠가 썩어문드러질 간을 걱정하는 것은 속좁은 남자의 핑계가 되기 일쑤다. 그러나 끊어진 필름만큼 고통스런 숙취는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기억, 쾌락과 고통 사이에 존재하는 그것은 자기상실이다. 아무리 꿰맞추려 해도 조각난 파편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지 못한..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 오상원의 /1955년 앙리 뒤낭(Jean-Hemri Dunant, 1828~1910)은 185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 당시 제분회사의 수리권을 얻기 위해 나폴레옹3세를 만나러 가던 중 솔페리노 전투에서 수천명의 부상병이 신음하는 참혹한 현장을 보게된다.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앙리 뒤낭은 국적에 구애됨없는 전쟁 부상자 구호를 위한 중립적 국제민간기구의 창설을 역설하게 되는데 이 기구가 바로 국제적십자사다. 그러나 전쟁의 특성상 국적을 떠나 전시에 부상당한 군인과 민간인에 대한 보호는 말뿐인 구호에 그치게 된다. 1949년 제네바 회의에서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전쟁 중 부상당한 군인이나 민간인뿐만 아니라 전쟁 포로에 대한 인권을 명시한 국제협약이다. '제네바 협약'에는 전지(戰地)에 있는 군대의 부상자 ..
대(大)를 위해 소(小)는 희생되어야만 하는가 곽학송의 /1953년 역사는 자기희생을 무릎쓴 영웅들의 피로 전진한다고들 한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대(국가, 민족...)을 위해 소(개인)를 희생한 영웅들의 삶은 늘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들의 삶은 교과서 속에서 추앙의 대상이 되고 개인의 삶은 그들의 그것으로 개조되기를 강요받기도 한다. 물론 교육적 차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 쓰러져간 수없이 많은 개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소수의 영웅들이 교과서를 점령하는 사이 이름없는 개인들의 삶은 그 가치마저 왜곡되기도 하고 폄하되기 일쑤다. 특히 거대한 국가적 담론 앞에서 늘 개인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지만 결코 숭고한 희생에 대..
젊은 박경리를 슬프게 한 것들 박경리의 /1957년 전쟁이 남기는 상처 중에 가장 치유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사회적 관계로 묶어 주었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특히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일컫는 한국전쟁은 수천년 동안 이어내려온 민족적 동질감을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이 침투해 철저히 파괴해 버린 경우다. 결코 우선일 수 없는 이념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영화 '만무방'에서 어느 깊은 산골에 사는 촌부가 낮에는 태극기를 걸고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야 했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덫에 스스로 갖혀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게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경리의 소설 는 이처럼 전쟁이 허물어버린 신뢰의 벽을 일..
엘렉트라, 그녀에게 돌 던질 자 누구인가 에우리피데스의 /BC 431년 초연 얼마전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이나 자신의 집에 방치한 고등학생이 체포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수능 성적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었다고 하니 지나친 학벌중시 사회가 낳은 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학생의 엽기적 살인행각에는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꿈꿔온 어머니의 무차별적 폭력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한다. 폭력의 대물림이다. 존속살인은 범죄라는 일상적 용어보다 패륜이라고 하여 반인륜적 범죄로 분류하기도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존솔살인은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2008년 44건에서 2010년 66건으로 2년 사이에 무려 50%가 늘었다고 한다. 또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8년 4.0%에서 2010년 5.3%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