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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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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눈에 비친 서울, 내 눈에 비친 대전 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사미르 다마니 지음/윤보경 옮김/서랍의날씨 펴냄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의 첫 서울 입성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에서야 수재 소리 듣던 삼천포였지만 낯선 거대 도시의 그것도 생전 처음 타보는 지하철에서 출구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매던 촌놈의 어리바리함도 그랬지만, 실은 나의 스무 살 그 때를 삼천포가 그대로 재연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천포가 신촌역에서 어린 양이 되었다면 나를 혼란에 빠뜨린 곳은 신설동역이었다. 수도학원 쪽으로 나오라는 형 말만 믿고 별 것 아니겠지 싶었는데도 이리 나와도 수도학원이고, 저리 나가도 수도학원이었고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검정고시학원은 왜 그리도 많았던지, 혹시 다른 학원을 수도학원으로 잘못 들었나 싶어 공중전화 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흘린 눈물의 의미 그림자를 판 사나이/김영하/2003년 슐레밀은 회색옷을 입은 신사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팔고 그 댓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는 행운 주머니를 받게 된다. 그림자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지만 행운 주머니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으니 회색옷을 입은 신사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림자를 팔아버린 슐레밀은 행복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그림자를 팔아버린 후 슐레밀은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외톨이가 되었고 애인마저도 슐레만을 떠나게 된다. 돈만으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 슐레만은 그림자를 팔았던 자신을 후회한다. 이 때 다시 나타난 회색옷을 입은 신사는 빼앗긴 그림자와 슐레만의 영혼을 맞바꾸자고 제안한다. 슐레밀은 비로소 회색옷을 입은 신사가 악마..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김경후 시인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피아(彼我)의 관계를 규정짓는 속담만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나의 관계 즉 요즘 육체적 나와 정신적 나의 관계도 이 속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퇴화된 흔적처럼 남아있던 생채기가 자꾸 덧나기만 하니 요즘 나는 그야말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속수무책 인도철학에 아트만(Atman)이란 용어가 있다. 를 읽다 이 말에 필이 꽂혀 '여강여호'와 함께 온라인 상에서 자주 쓰는 닉네임이기도 하다. 비록 철학 문외한인 나에게는 '자아' 수준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아트만은 신체 기관과 기능의 핵심적인 동력이다.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가라는 것도 이 아트만을 표현하기 위한 수..
고달픈 20대와 똘똘뭉친 50대 내가 이리도 속 좁은 놈인 줄을 오늘에야 알았다. 조간신문을 받자마자 폐휴지함에 처박아 버렸다. 여태 TV도 켜보지 않았다. 인터넷은 내 블로그와 내 이웃 블로그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다음뷰 창 두 개만 열어 놓았다. 밤새 어느 때보다 즐겁게 일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려야지 안 그러면 홧병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였다. 축제(?)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나란 놈은 겉으로는 대범한 척 하지만 속에는 좁쌀영감이 고집스런 표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위 IMF 세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교조 세대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역사를 배우고 정의를 배웠지만 정작 사회에 내딛는 첫걸음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새천년의 설레임은 강 건너 어렴풋이 보이는 난..
국가정책에 무너지는 선량한 개인들의 일상 암소/이문구/1970년 한국 유기농업의 발상지인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의 유기농지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3년 만에 해결됐다고 한다. 국토해양부와 농민 측이 유기농 하우스단지가 있던 두물머리를 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자는 종교계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는데 못내 씁쓸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일방통행식 국가정책의 폭력성과 그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선량한 개인들의 일상이 여론의 관심 저 편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다수의 행복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원칙이라지만 그 지고지순한 원칙보다는 다수의 행복을 가장한 위장 민주주의가 횡횡하는 현실에서 그것 때문에 소외받는 소수는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희생양인지 아니면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제물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실제 두물머리 유기농지 이전을 둘러싼 갈등은 복..
일상탈출을 갈구했던 아내의 꿈과 그 한계 내 여자의 열매/한 강/1997년 모 결혼정보회사가 이혼 남녀 9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 남성은 경제적 요인, 시댁·처가간 갈동, 성격·가치관의 차이, 배우자의 불건전한 생활 순으로, 여성은 경제적 요인, 배우자의 불건전한 생활, 시댁·처가간 갈등, 성격·가치관 차이 순으로(충청일보 인용) 조사됐다고 한다. 결혼도 이혼도 자유로운 시대라지만 이혼은 결국 가정이 무너지는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각자의 활동영역을 존중하며 이어나가는 부부생활에서 대화의 부족은 이 모든 이혼 이유들을 아우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죽 했으면 개그 코너의 제목이 '대화가 필요해' 였을까.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한강의 소설 에서도 주인공 부부의 판타스틱한 비극은 소통 ..
비상을 꿈꾸는 당신, 중력과 맞서 싸워라 산타페로 가는 사람/김승희/1994년 F =Gm1m2/R2 F: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 G: 중력상수, m1,m2: 두 물체의 질량, R: 두 물체 사이의 거리. 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고, 물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였다. 근거는 없지만 종교적 믿음과 다를 게 없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급한 과학적 영감을 얻기 전까지는. 그것은 바로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중력 때문이었다. 김승희의 소설 전편에서 독자는 '중력'의 압박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한편 '중력'의 압박은 '비상'이라는 탈출구를 향해 젖먹던 힘까지 쏟아내게 한다. 의 대결구도는 '중력'과 '비상'이다. 저자가 양자의 대결구도를 통해 힘겹게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
왜 서양에서는 '사랑니'를 '지혜의 이'라고 부를까? 앓던 이 빠진 느낌이 이런 것일까? 어찌저찌 15년을 미뤄오던 사랑니를 드디어 오늘 빼고 말았다. 유난히 크고 깊게 박혀있었던지라 아직 마취가 덜 풀린 입안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빼면 그만인 이놈의 사랑니가 어금니를 썩게 만들고 세상만사 다 귀찮아지는 치통의 원인이 되었다니 지금껏 참아온 내가 바보는 아니었는지 싶다. 근 1시간 동안 입을 벌리느라 얼마나 애를 썼던지 아직도 턱이 얼럴하다. 사랑니 뺀 자리에 가제를 물고 있느라 밥도 먹기 힘들고 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사랑니를 검색해 보았다. 문득 왜 이 쓸모없는 이를 사랑니라고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랑니에 관한 의외로 많은 정보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 특히 사랑니를 영어로 'Wisdom tooth'라고 한다는 정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정확한 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