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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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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글, 예술이 따로 없네 표구된 휴지/이범선(1920~1981)/1972년 어릴 적 가로등 불빛도 들지 않는 후미진 골목 담벼락에는 꼭 이런 낙서(?)가 있었다. 소·변·금·지 이런 경고 문구까지 써야만 했던 담벼락 주인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냐마는 이런 낙서가 있는 담벼락은 공인(?)된 소변 장소였다. 최소한 바지춤을 꽉 잡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던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곳이 바로 이런 낙서가 있는 담벼락 아래였다. 요즘이야 현대식 건물로 개·증축되었고 골목마다 가로등은 물론 CCTV까지 설치된 곳이 적지 않고 공중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어 굳이 이런 낙서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대신 공중 화장실에서 발견되는 재치있는 글귀들이 오히려 더 화제가 되고 있다. 또 가정집 화장실에도 아름다운 글귀를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고대인들은 왜 충치가 생긴다고 생각했을까 이범선의 소설 에서는 주인공 철호의 고난을 치통으로 형상화한다. 치통을 끝내는 방법은 앓는 이를 빼면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철호 앞에 펼쳐진 고난의 연속을 상징한다. 철호는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삶에 대한 의욕으로 발치를 결정한다. 그러나 출혈 때문에 양쪽 어금니를 동시에 빼서는 안 되는 것을 병원을 옮겨가며 양쪽 다 빼고 만다. 치통이 사라진 철호의 미래는 과연 밝은 세상의 그것이었을까. 소설은 철호가 과다출혈로 택시 안에서 죽어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치통. 그것은 통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다. 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일까 한 번 충치로 이를 앓게 되면 통증도 통증이지만 온 신경이 바짝 긴장해서 세상이 다 노랗게 보인다. 차라리 아프기만 하다면야 어떻게든 참아..
그는 조물주의 오발탄이었을까, 부정한 사회의 들러리였을까 이범선의 /1959년 요즘 언론보도를 통해 이웃의 무관심 속에 일주일, 한달 심지어 몇 년 동안 방치된 싸늘한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그럴 때면 문득 스쳐가는 소설 속 장면이 하나 있다. 따르르릉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여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신호대의 파랑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이범선의 소설 은 그렇게 스스로를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절망하던 주인공 철호의 쓸쓸한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쉴새없이 오가는 문명의 이기가 울려대는 소음 속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두는 철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