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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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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폭탄에 항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추천합니다 어릴 적 살던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몇 개 있었다. 나름 부유한 집은 개인 우물도 있긴 했다. 우물가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 긷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폴짝 뛰어 들여다 본 우물 안에는 온 우주가 다 들어 있었다. 하늘도 있고,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있었다. 나에게 소리라도 지르면 우물은 더 큰 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우물 속 나를 보고 웃어보기도 하고, 찡그려 보기도 했다.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내가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목이 말라 두레박을 던지면 우물 밖 나와 우물 속 나는 같은 줄을 잡고 서로 당기는 듯 했다. 혼자 있는 우물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동네 우물마다 무서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
문재인 대통령의 새로운 길 연일 파격이다. 불과 이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낯선 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것도 새가 울고 꽃이 핀 봄햇살 가득한 길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치뤄진 장미 대선의 승자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동안 보아도 못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살아서일까 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봄날 새벽 공기처럼 신선하기 그지 없다. 격이 없이 시민들을 만날 때면 딱 이웃집 아저씨나 할아버지다. 부창부수일까 영부인은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처럼 근엄함 대신 친근함으로 시민들과 포옹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낡은 구두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함이 느껴지고 독도 강치가 그려진 넥타이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급기야 대통령을 쪼그려 앉아 기다리게 한 간 큰(?) 초딩까지 출연했다. 어..
윤동주의 '봄' 그리고 우리의 '봄' 저녁 출근길 촉촉이 젖은 길가에 흐드러진 벚꽃이 터널을 만들었다. 벚나무 허리 아래로는 개나리가 질세라 노란 빛깔을 연신 뿜어내고 있다. 저만치 목련은 이미 작별 인사를 할 모양인지 고개를 숙인다. 멋없는 자동차들은 벚꽃 터널을 무심하게 씽씽 내달리고 있다. 연신 하늘만 쳐다보며 걷다보니 목이 다 아프다. 이런 나를 노란 달이 벚꽃 사이로 빼꼼이 엿보며 웃고 있다. 아!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유난히 길었던 올 겨울도 끝내는 봄빛에 길을 내주고 마는구나.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자연의 봄은 왔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았을 뿐이다. 4년이 그랬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마음의 봄은 늘 잿빛 꽃으로 물들었다. 봄놀이 간 아이들은 겨울에 갇혔고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4..
프로메테우스는 어떻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리스 신화]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너는 살찌고/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거북이야!/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푸로메드어쓰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의 시 '간'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보고 시인 자신의 희생적인 모습을 묘사해 양심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다. 시 '간'에 담긴 윤동주의 저항의식은 '푸로메드어쓰'로 형상화된다. 푸로메드어쓰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시 창작 당시의 표기법이다..
단 5분간의 회담이 결렬된 이유 김성한의 /1955년 "저걸 좀 내려다보아라. 과거는 잊어버리자. 저걸 수습해야 할 거 아니냐? 요컨대 너와 나의 싸움이니 적절히 타협하잔 말이다. " "그게 역사죠. 역사는 당신과 나의 투쟁의 기록이니까." "그러나 이건 진전이 아니라 말세다." "당신의 종말이 가까웠으니까……" "내 종말은 즉 세상의 종말이 아니야?" "흥, 그거 또 괴상한 얘기로군." - 중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신이 구름 위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단 5분간의 짧은 회담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인간세상에서는 프로메테우스와 신을 대리하는 자들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회담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타협이거늘 프로메테우스와 신 사이에는 접점이 보이지않는 평행선만 존재할 뿐이다. "지나치게 자기 재주를 믿는 것도 사고야. 이제 막다른..
故문익환 목사, "동주야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진보적 문학평론가인 임헌영의 에 따르면 저항문학은 문학인의 기능이나 대사회적 자세에 따라 문학인 자신이 단체나 결사 등에 직접 가담한 경우와 일시적인 의무나 지원 세력으로 어떤 단체나 운동에 뛰어든 경우, 직접 운동권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정서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경우 등 세가지 형태를 보게 된다고 한다. 임헌영은 한국의 대표시인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를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저항문학으로 분류하고 이런 시는 누구를 선동하지는 않으나 감명을 주며, 울리지는 않으나 가슴을 찌르며, 취하지는 않으나 각성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윤동주, 그를 말할 때면 '저항시인', '민족시인'이라는 호칭을 빼놓지 않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임헌영의 말대로 그는 행동적 저항..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3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殿)하는 프로메테우스. - 윤동주의 [간] - 저항시인 윤동주와 목에 맷돌을 달고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오버랩되는 시다. 프로메테우스는 압제에 저항하는 의지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윤동주가 그의 시에 프로메테우스를 끌어들인 절박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어떻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리고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