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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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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영혼'의 고대 그리스어가 '프시케'인 이유 프시케(Psyche)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영혼의 여신이다. 인간 여성으로 태어난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의 베누스)에 필적했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자 욕망의 신인 에로스(로마의 쿠피도)의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에로스와 함께 하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련의 과업을 끝낸 후 프시케는 불멸의 지위를 부여받고 여신이 되었다. 프시케와 에로스 이야기는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하고 완전한 이야기는 기원전 2세기경 고대 로마의 작가 아풀레이우스(Apuleius, BC 124년~BC 170년, 북아프리카 마다우로스 출신의 로마 소설가)가 쓴 (또는 로 세계 최초의 소설로 알려짐)에서 찾을 수 있다. 에 따르면 이름없는 도시..
동물로 표현되는 '신의 현시', 바 이집트 신화에서 바Ba는 항상 사람의 머리를 가진 새, 보통은 사람 머리를 한 매로 묘사되었다. 바는 종종 죽은 자의 미라 위를 맴돌거나 마음대로 무덤을 드나들 수 있다고 인식되었다. ‘바Ba’라는 단어는 보통 ‘영혼’ 또는 ‘정신’이라는 의미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신의 현시’로 번역할 수 있다. 바는 이집트 사상에서 인간의 특정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신왕국(기원전 1570년 ~ 기원전 1070년)에서 바는 죽음에서 살아남거나 존재하게 된 인간의 영적 측면이었다. 즉 바에는 그 사람의 개성과 인성이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는 종종 죽은 자의 무덤을 다시 방문하는데 시신이 바의 집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때로 신들의 바우Bau(바Ba의 복수형)로 여겨졌다. 헬리오폴리스에서 벤누 새는 태양신 라..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시대에도 고부갈등이 있었다 몇년 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프로그램 중에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를 다룬 드라마였다. 갈등의 종착지는 늘 가정법원이었고 매회 4주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지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끝내 가정법원을 찾게 된 부부갈등의 시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즉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도 있지만 고부갈등만은 칼로 무 썰듯 결코 봉합될 수 없는 미묘한 간극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딴 여자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상실감과 시어머니가 아닌 오로지 나만의 남자로 남아주길 원하는 며느리의 욕심은 늘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옛..
다시는 말(言)의 향연에 홀리지 말자 성석제의 /2011년 아마 5년 전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5년마다였다. 누군가의 말에 홀려 좀비처럼 끌려다니다 5년을 다 채울 즈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삶의 일부는 이미 악취나는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5년을 주기로 기억과 망각을 넘나들고 있다. 5년 전 뒷 겨울 우리네 영혼을 홀리고 만 것은 어이없게도 ‘747’이라는 결코 낯설지 않은 숫자이고 말았다. ‘숫자놀음’이라는 경박한 단어도 있지만 우리는 그 숫자가 주는 장밋빛 미래에 영혼을 홀리고 만 것이다. 실로 대단한 숫자의 위력이었다. ‘경제성장률 연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그 어디에도 내 삶의 질을 담보해주는 숫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복지는 그렇게 샴쌍둥이처럼 하나의 몸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
소크라테스가 닭 한마리 빚진 까닭은?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 플라톤의 [파이돈]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 통한다. 그의 능력이 얼마나 신통했던지 죽는 사람까지 살려냈다고 한다. 누군가 죽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노여움을 산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면 감사의 뜻으로 아스클레피오스신에게 닭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대단한 역설이 아닌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의술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다니....또 이 얼마나 당당한 포스인가! 예수, 석가,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소크라테스다운 의연함이 돋보이는 극적..
법정스님은 왜 이 책을 평생 간직했을까?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 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 중에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입적한 법정스님의 소박한 소망이 끝내 이루어졌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49재 3재가 치러진 지난 3월31일, 법정스님이 말하던 그 ‘꼬마’가 중년이 되어 나타나 스님이 남긴 6권의 책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 중년의 신사처럼 행복한 이가 또 있을까? 이승에서의 빛나는 삶만큼이나 입적 후에도 각박한 세상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촉촉이 적셔준 법정스님에게 절로 옷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