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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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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낯선 우리말①, 보짱 그야말로 말[言]의 홍수 시대다. 그 진원지는 바로 바다 건너 세상과 인터넷이다. 반면 불타는 가뭄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말도 있으니 일상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우리말이다. 일상 대화 중에 또는 높으신 분들의 연설 중에 외래어나 외국어를 섞어 말하면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는 양 현학적인 단어 선택은 아름다운 우리말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속의 출처도 불분명한 말들은 외계어라는 이름으로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제 우리말은 TV 속 우리말을 소개하는 짧은 코너에서나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문화 교류를 역설하지만 정작 우리 문화의 핵심인 우리말은 그 설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소설을 읽다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몇 백 년 전의 소설..
10만원 빌려 51만원 갚고 파산한 사연 염상섭의 /1949년 "근대법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해 위법한 이율을 부과하는 행위. 근대사회에 있어서도 금융기관의 기능이 미흡할 때, 자본축적이 미약한 저개발국가에서 투자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때, 금융기관의 금리수준이 현실과 차이가 많아 자금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 사금융이 발달하여 고리대는 계속 존재한다." 다음백과사전에는 '고리대금'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었고 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고리대금이다. 흔히 사채라 부르는 개인간 금융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합법을 가장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기도 한다. 길 건너로 여자중학교와 국민학교가 있는 네거리 문방구. 도대체 이 작은 문방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년 반만에..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염상섭의 /1948년 1층을 덮을만큼 뾰족 튀어나온 2층 처마, 영화에서나 본듯한 벽난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유난스레 크게 들리던 발자국 소리. 어릴 적 자주 놀러갔던 친구의 집은 여느 집과는 달랐다. 뿐만아니라 숨을 길게 들이마시면 바다내음이 가득했던 그 동네는 친구네 집과 비슷한 꼴의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 향취를 물씬 풍기곤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라고만 들었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런 집들을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고 불렀다. 적산가옥이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에 지어 살았던 집으로 말 그대로 적국의 재산이나 적국인 소유의 재산을 말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살았던 이 적산가옥은 대한민국 정부로 귀속되고 정부는 부족한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적산가옥..
"때르릉", 당신은 전화가 있어 행복하십니까? 염상섭의 /1925년 1876년 전화를 처음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장인 가디너 허바드는 당시 미국 최고의 전신회사인 웨스턴유니언사를 찾아가 전화기 특허권을 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웨스턴유니언사는 내부 검토 결과 전화기는 신기한 장난감에 불과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전화기는 결점이 너무 많아 통신수단으로 쓸 수 없다. 그저 장난감이나 신기한 물건일뿐이다.” 사실 전화를 최초 발명한 사람은 벨이 아니다. 안토니오 무치가 이미 1854년에 기계식 전화기를 발명했으나 1876년 벨이 전기식 전화기의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잘못 알려진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73년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는 자신이 최초로 만든 휴대전화로 친구와 이런 통화를 했다고 한다. 쿠퍼와 통화한 친구는 최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