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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을 살기 위해 열한 달을 죽어 사는 아내 문순태의 /1986년 최근 주요 정당 대표들이 모두 여성들로 채워짐으로써 새 정치에 대한 바램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들은 극과 극의 대비라 할 정도로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정치 역사상 처음일 것 같은 여성대표 시대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하는 에로스니 플라토닉이니 하는 단어들이 특정 상황을 아우르는 시각적이고 제한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면 모성(애)는 이들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가장 근원적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에로스니 플라토닉이니 하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근원적 그것..
서리를 밞으면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패강랭』/「삼천리문학」1호(1938.1)/창비사 펴냄 옛 것을 그리워하고 복원을 꿈꾼다면 우리는 흔히 ‘보수’라는 말로 그 사람의 이데올로기를 특징짓는다. 한편 ‘보수’라는 말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단 우리사회만 한정한다면. 정치지향적 특성이 강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게다가 보수와 수구의 의미를 혼동하여 사용하다 보니 건전한 의미의 보수가 수구적 이미지로 덧칠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적으로 보수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거 군사정권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나타냄으로써 보수의 올바른 정의가 훼손되기도 한다. 옛 것을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한국 근·현대 작가 중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로 꼽히는 이태준의 소설을 읽다 보..
빼꼼이 보이는 아침햇살이 아름다운 산책로 여행의 백미는 어쩔 수 없이 남는 아쉬움이 아닐까? 자주 하는 여행도 아닌데 꼭 뭔가 빠뜨리고 마는 준비 소홀의 아쉬움, 부불었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아쉬움, 일상으로 돌아오기 싫은 마지막날의 아쉬움...여행은 늘 채움을 기다린다. 급하게 서두르다 카메라를 빠뜨린 게 그랬고, 불만서린 숙박시설이 그랬고, 돌아오는 날 뒷풀이가 그랬다. 장령산자연휴양림에서 1박2일의 꿈같은 시간이 못내 아쉬워 1월1일에 개장한 보문산 아쿠아 월드를 찾았는데 사람홍수 속에 입구에도 못 미쳐 되돌아와야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대 가득했던 여행 뒷풀이였는데... 문명의 이기가 삶의 여유만 앗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요놈의 휴대폰 때문에 여행을 언제고 들춰볼 수 있는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때로는 ..
새해 첫날 여행지에서 뿔난 사연 매년 12월31일이면 찾는 산이 있다. 옥천에 있는 장령산이다. 휴양림이 잘 가꿔져 있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이 일 년을 맞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아 1박2일 일정으로 쉬고 오기에도 좋다. 몇 년전 대전 근교 다른 여행지에서 연말연시를 보낸 적이 있긴 한데 아무리 시간과 비용, 시설 등을 따져봐도 장령산만 못했다. 또 가까운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데는 모임 회원들 대부분이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한몫하고 있다. 올해는 다들 시간이 여의치 못해 매년 12월31일에 떠나던 여행을 1월1일로 하루 늦춰야만 했다. 다소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어찌됐건 올해도 거르지 않고 회원들간 친목을 다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서로들 위안했다. 며칠간 눈이 많이 내려 걱정하기도 했..
에반젤린, 기억 속에 담아둘 걸 그랬다 아카디아의 처녀 에반젤린은 대장장이의 아들 가브리엘 라주네스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인디언 전쟁 중에 영국군이 식민지 보호의 목적으로 프랑스 거주인들을 추방함으로써 이들 연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에반젤린은 가브리엘을 찾아 미시간의 숲 속을 방황하다가 늙어 필라델피아에서 수녀의 도움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 때 질병으로 신음하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옛 연인 가브리엘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녀도 충격으로 사망하여 그들은 나란히 묘지에 묻히게 된다. 에반젤린의 가브리엘을 향한 가슴시리도록 슬픈 전설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10월의 거센 바람이 회오이바람처럼 휩쓸며 먼 바다로 흩날릴 때 그들은 먼지와 낙엽처럼 흩어졌다. 남은 것이라곤 아름다운 그랑프레(..
故문익환 목사, "동주야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진보적 문학평론가인 임헌영의 에 따르면 저항문학은 문학인의 기능이나 대사회적 자세에 따라 문학인 자신이 단체나 결사 등에 직접 가담한 경우와 일시적인 의무나 지원 세력으로 어떤 단체나 운동에 뛰어든 경우, 직접 운동권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정서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경우 등 세가지 형태를 보게 된다고 한다. 임헌영은 한국의 대표시인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를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저항문학으로 분류하고 이런 시는 누구를 선동하지는 않으나 감명을 주며, 울리지는 않으나 가슴을 찌르며, 취하지는 않으나 각성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윤동주, 그를 말할 때면 '저항시인', '민족시인'이라는 호칭을 빼놓지 않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임헌영의 말대로 그는 행동적 저항..
김삿갓, 시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다 1811년 평안도 용강에서는 조선 조정의 지역차별에 격분한 백성들이 홍경래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백성들의 지지를 업은 홍경래의 난은 짧은 기간 안에 평안도와 함경도를 점령해 갔다. 당시 함흥 선천방어사로 있던 김익순은 홍경래 군사들의 습격을 받고 민란군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 일로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 후 모반 대역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김안근은 자식들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했다. 김안근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과거시험에서 김익순의 죄를 비난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김익순이 자기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홀연히 집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요즘 막장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출생의 비밀이라지만 이보다..
법정스님은 왜 이 책을 평생 간직했을까?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 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 중에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입적한 법정스님의 소박한 소망이 끝내 이루어졌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49재 3재가 치러진 지난 3월31일, 법정스님이 말하던 그 ‘꼬마’가 중년이 되어 나타나 스님이 남긴 6권의 책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 중년의 신사처럼 행복한 이가 또 있을까? 이승에서의 빛나는 삶만큼이나 입적 후에도 각박한 세상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촉촉이 적셔준 법정스님에게 절로 옷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