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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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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내 사촌 별정 우체국장/김만옥/1986년 "당신은 지금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살기 좋은 세상' 이란 것이 '○○○은 ○○○이다'와 같이 정확한 정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각양각색인지라 선뜻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해도 '소시민'이라고도 부르는 보통 사람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머리카락 한올한올마다에 굴곡진 인생의 자화상을 선명하게 아로새긴 사람들 집단에서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안방에서 클릭 하나만으로 지구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주말에는 바다 건너 휴양지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전화 한 통이나 클릭 한 번으로 끼니마저 해결할 수 있으니 과거..
직선을 그릴 수 없었던 한 만화가의 절규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임철우/1984년 생각해 보세요. 난 지금껏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야말로 약하고 힘없는 소시민 그대로지요. 게다가 보시다시피 겨우 오십 킬로그램 근처에서 체중기가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타고난 약골인 데다가 아직껏 닭 한 마리도 목 비틀어 죽여본 적이 없는 겁쟁이입니다. - 중에서- 그야말로 소시민이었던 이 남자가 지금은 정신병동에서 감호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숨통을 조여오는 독가스에 자기의 일은 물론 일상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독가스의 정체는 군대에 있을 때 사방을 밀폐시킨 천막 안으로 방독면을 쓴 채 오리걸음으로 들어가 훈련조교들의 명령에 따라 방독면을 벗은 이삼 분 동안에 눈물 콧물 질질 흘렸던 기억을 떠..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소시민들의 일상의 기록 서정인의 /1968년 E.H 카는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은 책 라는 책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역사란 역사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했다. 더불어 역사가와 그가 선택한 사실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 사이의 대화로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세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라고 했다. E.H 카의 역사에 관한 명쾌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고 또한 영웅들의 놀이터란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가 말한 주목할 만한 가치란 승자가 된 몇몇 영웅들에 의해 평가되고 왜곡되기도 하며 폄하..
창녀가 청소부를 사랑한 이유 문순태의 /1988년 세상에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이율배반적인 선전선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이 그랬다. 그는 12·12 쿠데타를 일으켰고 수많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으며 양심있는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고 심지어 갖은 탄압과 고문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5공화국의 4대 국정지표 중 하나가 바로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그뿐인가. 전두환이 만든 당의 이름은 '민주정의당'이었다. 결코 정의롭지 못했던 아니 가장 불의했던 정권이 정의를 외친 것이다. 언제나 맑고 숭고하다고 여겼던 단어 하나가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동안 그렇게 믿고 살았던 소시민들도 동시에 나락으로 추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담양 추월산 아래 대장간에서 시우쇠를 다루는 대장장이었으나 지금은 광주..
양심을 헌신짝 버리듯하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다 지하련의 /1946년 #풍경1. “텐노오 헤이까(천황 폐하)가 고오상(항복)을 했어요.” “……?” “기쁘잖어요?” “왜? 왜. 기쁘지!…기쁘잖구!” “……” “너두 기쁘냐?” “그러믄요.” “그럼 웨 울었어?” “징 와가 신민또 토모니(짐은 우리 신민과 함게) 하는데 그만 눈물이 나서 울었어요.……텐노오 헤이까가 참 불쌍해요.” “텐노오 헤이까는 우리나라를 뺏어갔고, 약한 민족을 사십 년 동안이나 괴롭혔는데, 불쌍허긴 뭐가 불쌍허지?” “그래도 고오상(항복)을 허니까 불쌍해요.” “……” “……목소리가 아주 가엾어요.” #풍경2.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이던 1979년10월 어느날의 기억은 뚜렷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잊혀지지는 않는다. 그때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오지의 섬, 뭍에서 뱃길로 2~3간..
시한부 여자의 애인이 되어주고픈 남자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까마귀』/「조광」3호(1936.1)/창비사 펴냄 호상(好喪)이란 말이 있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에는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는 죽음에도 호상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오래 살면서 고통없이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상에서 열망하는 마지막 바램인지도 모른다. 또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한다. 간혹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 뒤에 오는 세상은 꽃과 빛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도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태준의 『까마귀』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서 찾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