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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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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배설할 권리마저 없었다 백신애의 /1934년 백신애는 1929년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 당선되어 등단한 여류 소설가다. 30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녀가 소설로 말했던 가난과 여성의 문제는 짦은 생을 무색케할 만큼 긴 여운을 남긴다. 백신애는 여성동우회와 여자청년연맹 등에 가입해 계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소설들에서 보여주는 리얼리즘도 직접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백신애의 소설은 경향파적 성격이 강하지만 경향문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살인이나 방화 등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성의 섬세한 필치로 서민대중의 궁핍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34년 발표한 은 백신애 소설의 가장 큰 주제라 할 수 있는 빈곤과 여성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왼손잡이의 동행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조광」12호(1936.10)/창비사 펴냄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릭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한 편의 짧지 않은 시를 읽는 듯 서정적이다. 소설을 시문학으로 한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유진오 등과 동반작가로도 불리는 이효석은 구인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그의 소설과 달리 실제 생활은 커피를 마시고 버터를 좋아하는 등 도시적 면모가 강했다고 한다. 『메밀꽃 필 무렵』만 본다면 작가 이효석의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확인하는데..
장례식장에 울려퍼진 메이데이의 노래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분가꾸효오론」(1935.5)/창비사 펴냄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은 그가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32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질소비료공장』은 연재 도중 일제의 검열로 중단되기도 했으나 한국 프로 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인정받아 일본이나 중국에 번역 소개되기도 했던 소설이다. 창비사에서 발굴 소개한 『질소비료공장』의 출처가 일본의「분가꾸효오론,文學評論」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방 후 이북명은 조선플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담했고 이 후 북한에서도 문화계 요직을 두루 거친 북한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제의 사상탄압으로 중단되었던 연..
전향 때문에 애인을 배신한 남자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경영』/「문장」19호(1940.10)/창비사 펴냄 앞서 김남천의 소설 『처를 때리고』에서 어느 전향 지식인의 현실과 타협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남천 또한 일제의 사상탄압의 와중에 전향서를 쓰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점도 살펴 보았다. 김남천의 전향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위장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김남천이 전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된 『경영』이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감중인 오시형,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시형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온 애인 최무경,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남천은 이들의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비록 보호관찰이기는 하지만..
'방란장 주인' 마침표(.)가 단 하나뿐인 소설 [20세기 한국소설] 중 박태원의 『방란장 주인』/「시와소설」1호(1936.3)/창비사 펴냄 노래 부를 때 뿐만 아니라 책도 읽다 보면 호흡이 필요할 때가 있다. 호흡의 길이는 읽는 이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적절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호흡은 책의 이해도를 높이고 내용의 흐름을 원활하게 연결시켜 준다. 또 호흡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호흡은 대략 한 문장이 끝나거나 길지 않은 문단이 끝났을 때가 대개는 적절한 타이밍으로 여겨진다. 여기 언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혼란스럽게 하는 소설이 있다. 박태원의 소설 『방란장 주인』이 그것이다. 『방란장 주인』은 단 한 문장으로 된 단편소설이다. 아무리 단편소설이라지만 어지간한 필력으로는 소화해 내기 힘든 5,558자에 이르는 소설..
소설 '농군'이 친일논란에 휩싸인 이유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농군』/「문장」임시증간 창작32인집(1939.7)/창비사 펴냄 창권이네 가족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들과는 동떨어져 보이게 창백한 아내 이렇게 넷뿐이다. 그들은 고향 강원도를 등지고 장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현재 이 가족에게는 밭 판 돈 삼백이십 원이 전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만주의 쟝쟈워푸라는 곳이다. 창권이가 다니던 보통학교 교사였던 황채심의 권유로 이곳 이역만리 만주땅에 한 가닥 희망을 일구려 하고 있다. 쟝쟈워푸는 조선 땅과 달리 산도 없고 소 등어리만한 언덕도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조선 사람들이 지금은 근 삼십 호의 조그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아무리 중국 정부로부터 개간권을 부여 받았다지만 이곳..
상상 자유, '봄봄'의 뒷이야기 만들기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봄봄』/「조광」2호(1935.12)/창비사 펴냄 김유정표 해학과 익살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봄봄』을 꼽겠다. 맛깔스럽다.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유정이 당시 농민들이 사용하던 비속어와 강원도 사투리 등을 섞어가며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주고 있는 소설이 『봄봄』이다. 소설 속 인물들간 갈등이 깊어갈수록 독자들의 입가에는 굵은 미소가 번져간다. 특히 머리 속에 그려지는 장면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배꼽이 달아나도 모를 지경이 된다. 지나치게 웃다 보면 눈물이 난다. 어느덧 그 웃음은 즐거워서가 아니라 슬픔의 눈물로 변하여 간다. 김유정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위대한 까닭이다. 오늘은 그냥 웃어볼까 한다. 그 동안의 딱딱했던 교..
화수분을 꿈꾸며 거리로 내몰린 우리시대 화수분들 전영택의 /1925년 최근 언론의 외면 속에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사측의 집단해고에 맞서 매일같이 눈덮인 아스팔트 위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고작 75만원이라고 한다.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학교측이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고용한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일당이 최고 12만원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실소마저 자아낼 수 없는 현실에 막막해질 뿐이다. 한편 작년 7월, 결정시한인 6월30일을 넘기면서까지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 지루하게 진행된 2011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4320원으로 결정됐다. 2010년의 4110원에서 고작 210원 인상된 금액이다. 실업난과 치솟는 물가상승률을 도외시한 비현실적인 결정이다. 게다가 틈만 나면 '서민'을 외치던..